75세나 되도록 자식이 없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네 후손이 바닷가의 모래처럼]..
[하늘의 별처럼 셀 수 없을 만큼 번창하게 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창15:4-5)
그 약속은 90세 된 모친과 100세 된 부친을 통해 25년 만에 싹이 텄습니다.
그 일이 이루어지기까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여 그 모친 사라는..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보려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몸종이었던 하갈을 남편에게 첩으로 주어 자식을 보게 하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남편에게 하신 약속을 이해하였던 것입니다.
실로 10여년을 기다리다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재해석하고 실행한 결과는..
그 가정에 너무나도 끔찍한 불행을 낳고 말았습니다.(창16:1-16)
가족 구성원들 간에 불화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스트레스로 인한 고통이 극심하여 견딜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아브라함의 가정사를 대하면서..
인간의 헛된 노력이 아무리 난무할지라도..
하나님의 경륜과 그일의 섭리는 여전하여..
시기가 무르익고 때가 차면..
기적의 일들이 어김없이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가 아무리 짖어댈지라도..
기차를 달리게 하거나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싹이 비치기까지 아브라함의 25년 동안의 세월은..
인내로 이룬 고난의 세월이었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의 21년의 세월도..
그 여정을 살펴볼 때 고난의 세월이었습니다.
모세의 일생을 통하여 나타난 120년의 세월도 역시 고난의 세월이었습니다.
전반기 40년의 잘나가던 왕궁 생활도..
후반기 양떼를 돌보던 거친 광야의 목자생활 40년과..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던 지도자의 생활 40년도..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고난의 연속이었음을 ..
우리는 성경의 기록을 통하여 엿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인도에 따라 여리고를 함락시키고..
요단강을 건너는 과정과..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그 모든 여정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그들이 놀고먹으며 희락을 누리고 살았던 것이 아니라..
고난의 연속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의 국가형성의 과정과..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소란 속에서 안정을 찾기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모하며 겪었던..
다윗의 고난(苦難) 또한 결코 가벼운 시련이 아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오셔서 고난을 당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던 것을 기념하는 주일이 [종려주일]입니다.
그분이 대추야자 잎사귀를 두 손에 잡아 열광적으로 흔들며..
환영하는 군중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해 하실 수 없었던 것은..
그분이야말로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훤히 내다보시는..
하나님으로서 사람의 모양으로 오신 그리스도이기 때문이었으며..
열광적으로 환영하던 저들이..
얼마 후에는 자신을 죽여 달라고 로마 관청을 향하여 열광적으로 데모하는..
악독한 군중들이 될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수많은 선지자들이 나타났다가..
당을 지어 행동하는 군중들의 등쌀에 견디지 못하고..
온갖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던 사실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또 그 고난과는 비교도 할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고난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분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분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얼굴에 웃음을 띠지 않았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인간역사를 통하여..
믿음의 조상들이 겪었던 고난을 살펴보고..
그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얻게 되었던..
복과 선물들의 크기와 무게를 가늠해 보면서..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크고 작은 고난들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복음으로 인해 고난을 겪지 않은 사람들이 없었음을..
성경의 기록이 증거하고 있으며..
바울과 그 이후의 속 사도라 칭함 받는 분들 역시..
고난을 두려워 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백합화는 가시 채에 상처가 날 때 더 진한 향기를 풍긴다는 말이 있듯이..
그리스도 예수와 그로 인한 복음 때문에 고난을 당했던 믿음의 조상들은..
한결같이 목숨을 버리기까지 예수 복음과 믿음을 지켜내었습니다.
지금 이 나라에서 일고 있는..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의 비정상적인 행태들과..
또 일부 목회자들의 비도덕적이고 반윤리적인 모습들을..
마치 전체가 그러한 것처럼 매도하는 짓들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습니다.
이때문에 기독교회와..
예수복음과..
믿는 사람들이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에 근거하여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그로 인한 원수마귀의 참소는 힘을 잃게 될 것이 분명하고..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것 때문에..
교회와 복음을 붙들고 고난을 당하고 있는 교인들은..
앞으로 큰 복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고난을 당할 때는 죽을 것처럼 고통스러우나..
그것으로 인해 상상할수 없이 큰 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선물로 내려옵니다.
다윗도 시련 후에 [고난을 통하여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고 고백하며..
회상했던 것을 생각하는 고난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시119:67, 71)
고난 주간이라고 해서 예수님을 불쌍한 존재로 생각하고 슬퍼하는 것을..
예수님은 원하시지 않습니다.(눅23:27-28)
우리가 세상살이 하면서 받는 고난은..
주님이 십자가를 지기까지 받으신 그 고난과 비교할 때..
새발의 피도 되지않을 만큼 보잘것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저지른 죄악을 짊어지고..
우리 대신 십자가의 모진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도 분에 넘치게 복락을 누리게 되고..
여기를 떠나서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서 좋은 것들을 계속 누리게 되었음도..
그리스도로 오셔서 고난 받으신 예수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죄에 대한 형벌을 면하게 된 감사와 감격이 넘치는 고난 주간..
좋은 것을 선물받고 즐거워하는 고난 주간..
그분의 사랑을 깨닫고 기쁨이 샘솟는 고난주간을 보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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