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고려말의 격동기에 이성계, 정몽주, 정도전의 국가경영의 철학들을..
잠깐 엿볼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종이호랑이 같이 무능한 왕을 보필하던 이성계의 야심과..
기득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개혁을 두려워 하던 정몽주..
그리고 진취적이고 호전적인 기개를 품었던 정도전..
그중에서 의자왕(나^^)은 일편단심으로 대변되는 정몽주보다..
개혁정신으로 온몸을 불살랐던 정도전의 국가경영철학을 높이 삽니다.
정도전은 당시 중국이 요동일대를 손을 놓고 방치해 두고 있을 때..
그곳을 정벌하여 조선에 귀속시키고자 하여서..
용감하게 개혁에 대한 발의를 하였습니다.
지방 호족들의 가병들을 국가가 관리하는, 병권의 개혁을 주창하였으며..
일반 서민들의 토지를 야금야금 갉아먹어..
점점 대부호의 길로 나아가던 대지주들을 타파하고..
나라안에 있던 대지주들의 모든 토지들을 국가가 환수하여..
인구비례로 토지 재분배의 토지개혁을 시행코자 하였습니다.
고려말에 반대파의 질시와 모함을 받아 나주로 유배되었을 그 때..
서민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가를 몸소 목도하였고..
양반들과 대지주들의 횡포가 얼마나 가증스러운 것들이었는가를..
몸서리치게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단호히 개혁을 시행해야만..
국가와 민족의 앞날에 장미빛이 비취게 될 것이라는 확신에서 였습니다.
이성계와 정도전의 이해타산이 딱 맞아떨어진 듯 하여 잘 되는 것 같았으나..
왕권탈취의 야망으로 가득했던 이성계의 세째아들 이방원에게 암살되어..
그의 꿈은 산산히 부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정도전의 개혁의 꿈은 거대하였으나..
안타깝게도 그는 그 꿈을 채 펼쳐보기도 전에 어이없이 살해당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이 초기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무당들이 들끓는 나라의 혼란한 문화를 바로잡겠다며..
나라 안의 모든 무당들을 색출하여 처형하였습니다.
백성들의 신앙을 개혁하고자 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눈에 가상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등따숩고 배부르게 되자 점점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던지지 않고..
자기 생각에 따라 모든 일처리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흉내만 내고 잔머리를 굴리며 왜곡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어느날 부터인가 그를 인도하시던 성령이 떠나고..
그의 주위에는 악령이 서성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국가경영의 중심에서 그를 사랑하며 돕던 사무엘도 죽고..
답답한 문제로 하나님께 기도하여도 하나님은 응답하시지 않았습니다.
전전긍긍 하던 사울은 전에 자기가 숙청했던 무당을 찾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평민의 복장으로 변장을 한 채..
엔게디 황무지에서 초라하게 목숨을 연명하던 무당을 찾아갔습니다.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곳에 도로 누운 꼴이었습니다.
무당은 사무엘의 영을 불러내었으나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게는 못하였고..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그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시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초대 왕 여로보암은..
절기 때마다 남쪽나라 유다로 몰려가던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번뇌에 빠져들어 잠못드는 밤이 잦았습니다.
그는 드디어 꾀를 내어 기발한 묘수를 짜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절기때 백성들의 민족 대 이동의 수고를 덜어주는 개혁(?)을 마련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레위지파에서 제사장을 선발하여 기름을 붓고 임직시키라]고 하셨으나..
여로보암은..
자기 눈에 능력있어 보이고 재력도 있고 통솔력도 있으면..
[일반 백성 중에서도 아무나 제사장에 장립]하도록 하는..
초유의 개혁(?)을 시행하였습니다.
파격에 파격을 거듭하는 여로보암이 사람들 눈에는 멋있어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성전에서만 절기의 제사와 축제를 열라고 하셨으나..
여로보암은 [예루살렘까지 갈것 없다]며..
벧엘과 단에 신전을 건축하고 금송아지 형상의 신상을 제작하여..
[이것이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다]라고 선포해버렸습니다.
또한 남 유다에서는 음력 7월 15일이 초막절이었는데..
여로보암은 이것을 한달을 늦추어 8월 15일로 슬그머니 바꿔어버렸습니다.
이 잘못된 전통은 하나님을 경외하던 사람들마다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오랜세월 동안 바로잡지 못했습니다.
성탄절 또한 예수님의 생일이 아니라는 것이..
성경학자들이나 교회 지도자들도 대부분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예수님의 생일을 성경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일 날, 그것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은 그날을 기념하라고 하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생각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던 사람들이..
없는 예수님의 생일 날을 억지로 추측하고 유추하여 만들어서..
대대적으로 잔치를 벌여왔습니다.
이런 잘못된 절기나 생일 날 또한..
기독교회에서는 반드시 개혁해야 할 부분들인 것입니다.
설, 정월 대보름, 추석 한가위 등등..
우리 민족의 전통적 미풍양속이라 굳게 믿었던..
차례나 조상숭배의 제사에 대하여 우리는 지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죽은 조상들에 대한 숭배와 제사는 민족의 전통적 미풍양속이 아니고..
지금부터 619년 전 이성계에 의해 중국에서 수입된 유교의 찌꺼기종교입니다.
사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조상제사의 유래는 고려시대 이전까지..
그 흔적을 거의 찾아 볼 수 없으며..
비로소 고려 말엽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고려조 때 중국의 유교가 낳은 주자학(朱子學)이 전래 되었는데..
그 때 조상제사의 의식도 함께 유입된 것입니다.
이것이 퇴계 이황선생에 의하여 성리학으로 재정립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죽은 조상들에 대한 제사를 금하고 있는 기독교회에 대하여..
입에 게거품을 물고 비난과 저주를 퍼붓고 있으나..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어리석음의 극치라 아니할수 없습니다.
본래 제사는 하나님이 사람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제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흡족히 제물을 잡수시고 죄를 용서하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는 소립니다.
인류역사상 정치와 종교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였습니다.
그것은 100% 가짜종교의 경우 그렇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들을 죽여 그 피로 세우신 기독교회는..
종교가 아님을 전제하고 교회와 정치는 결탁할수 없습니다.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는 것이 개혁이고 회개입니다.
앞서 지금까지 개혁이나 회개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서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개선될 수는 없는 것임을..
역사적으로 잠시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완벽한 개혁과 회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그것은 전적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셔야 하는 일입니다.
율법과 제사제도의 개혁도 하나님이 아들을 죽여 그 피로 다 이루셨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잣대로 하여..
죽은 조상에 대한 제사가 잘못된 것임을 확인한 사람마다..
마음과 생각을 돌이켜서 금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에서 생명과 복이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