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편안한데서 오는 게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을 쉬운 것으로 잘못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을 편안한 중에 오는 것으로 잘못 생각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쉬운 것도, 편안한 중에 오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이란 [깊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의 손을 잡아 확 낚아채는 것]입니다.
구원이 율법으로는 어려운 것이지만 복음으로는 쉬운 것입니다.
사람(죄인)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구원입니다.
율법아래에서는 죄인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속죄제(贖罪祭)라는 절차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는 죄인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반드시 만나야 하고..
예수그리스도 외에 또 다른 속죄제가 필요치 않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를 통하기만 하면..
생명과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직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아무리 요란하게 정죄를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피의 길을 따라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우리의 앞을 가로막을 명분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이 죽은 후에나 오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구원은 살아 있을 때 시시때때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때 수시로 닥치는 어려운 일들..
여러 가지 현상으로 나타나는 견디기 힘든 고난에서 건짐 받는 것이 구원입니다.
때로는 죽을힘을 다한 사람의 노력이 물거품처럼 허무하게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그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리면 그가 다 하십니다.
모든 이론이 물거품이 되듯이 그가 홀연히 임하셔서 문제가 저절로 풀리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사람의 고생은 출애굽과 이스라엘 자손들의 광야 40년의 고생과 같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자손들의 삶의 목적은 가나안입니다.
그곳이 최종목적지였습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천국입니다.
그곳이 최종목적지입니다.
고난이 춤추는 세상에서도 천국의 자녀들로써의 자세를 잡고..
믿음으로 견뎌 나아가는 훈련입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귀한 자녀들을 고생시키십니다.
편안함 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영원히 구경도 못할 좋은 것들을 안겨주시려고..
그 자녀들을 잠시 동안 고난의 도가니에 던지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에서 광야를 거쳐 가나안까지의 여정을 통하여..
인도하신 내용을 살펴보면, 말세를 사는 우리에게도 있는 인생여정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육신의 때에 사람은 먹는 것이나 배설하는 것이나 잠자리가 편안해야 행복입니다.
그런데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구원은 결코 편안하거나..
들뜬 기분으로 나들이 하는 것처럼 오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어린양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가 7월 14일날 해질녘에 양을 잡고..
양을 먹을 집 좌우 설주와 인방에 그 피를 바르고..
밤에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을 함께 먹으라’고 하셨습니다.(출12:3-11)
출애굽을 행동개시 하기도 전에 먼 미래에 해야 할 일에 대하여 미리 당부하기도 하셨는데,
7월 15일부터 일주일 동안은 무교병(無酵餠)을 만들어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무교병이란 곡식가루를 물에 개어 반죽하여 그대로 급히 만든 빵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무교병은 누룩을 섞어 발효시키지 않은 빵을 뜻합니다.
고기도 숙성시켜야 맛이 있는 법입니다.
그것도 아니면 물에 삶아서 건지고 양념하여 먹으려면 절차가 복잡해집니다.
고기요리를 초간단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불에 굽는 요리입니다.
쓴 나물과 아울러 먹으라고 하셨는데,
쓴맛 나는 약용 나물을 일부러 골라서 반찬 만들어 먹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나물이든지 다 조금씩은 독성물질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삶아서 찬물에 어느 정도 담가두어야 독소가 빠지고 중화되어..
반찬으로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들의 구원은 절차가 복잡한 것을 모조리 생략한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도록 설계하신 것입니다.
깜깜한 밤중에 길을 나서고 바닷가에 진을 쳐서 또 고약한 상황이 되기까지..
지체하도록 하셨던 것은..
지독한 고생 속에서 하나님의 큰 구원을 경험케 하시려는 뜻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이러한 기사들을 접하면서 고생이 심하면 심할수록..
기적은 크게 나타나기 마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예수 믿고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한번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것은 구원입니다.
영적생활은 어려운 때를 살면서 구원을 유지시키고 보수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먹고 사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박한 식물이라고 할지라도..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 할 때의 그 음식보다는 낫기 때문입니다.
상대적 빈곤감, 상대적 박탈감을 떨쳐버리고 감사의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야 합니다.
이웃들을 기준으로 삼지 말고 성경 속의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잣대를 두고 살고..
그 말씀에 저울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구원은 결코 편안함만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누룩은 작은 누룩곰팡이에서 시작하여 온 덩이로 퍼져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누룩은 밀기울을 발효시키는 효모입니다.
누룩으로 술을 빚기도 하고 곡식가루를 부풀려 발효시켜 빵을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누룩은 사람의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누룩이란 것은 적당하게 잘 만들면 아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지만..
자칫 지나치면 떡덩이 전체를 버려 먹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밀기울을 적당한 온도와 습도로 발효시켜서 누룩을 만들어야 하는데..
습도조절과 온도조절을 잘못하면 쉽게 썩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의 누룩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은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려하는 교훈’을 말하는 것입니다.
큰 죄는 가볍게 여기고..
별것도 아닌 작은 죄, 아주 소소한 죄는 크게 취급하여 가르치는 행위를 뜻합니다.
그리고 속과 겉이 전혀 다른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잠16:25)
그러면 사두개인의 누룩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현세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고 내세를 철저히 부정하는 자들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전혀 인정하지도 않고 천사나 마귀의 존재도 부정합니다.
우리 중에는 혹시 이런 사람이 없습니까?
교회 안에서 자기의 생각을 서슴없이 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혼란케 하는 자들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똑같은 자들입니다.
교회의 부흥을 가로막고..
사랑과 은혜로 마음이 하나 되어야 할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 앞에 자기의 사적인 견해나 사적인 이론을 서슴없이 부숴버리는 용기가..
교인들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