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하나님!

길되신 예수님..

순악질 의자왕 2014. 6. 14. 19:59

이 세상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늘에는 항로(航路)라고 해서 비행기가 다니는 길이 있고..

바다에는 해로(海路)라고 해서 배들이 다니는 길이 있습니다.

또 육지에는 사람과 우마차와 자전거와 차동차가 다니는 길이 있고..

산과 들에는..

야생동물들이 영역을 순찰하면서 만든 그들만의 길들이 따로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길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속도로도 시원하게 잘 뚫려있고 지방도로와 골목길까지 포장이 잘 되어있습니다.

경제가 옛날에 비해 부강해졌기 때문입니다. 산에는 임도(林道)가 나 있습니다.

삼림의 관리와 임산물의 재배와 수확과 운반을 위함입니다.

논과 밭에는 농로(農路)가 나 있습니다.

피땀 흘려 지은 농산물의 수확과 운반을 위함입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유럽 여러 나라에는 지금도 옛날 로마시대에 건설했던 도로가..

버젓이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고대 로마는 제국의 질서유지와 비밀스런 통신체계를 개발하여 사용하였을 뿐 아니라

현재 이탈리아의 로마에서는 고대 로마시대에 만든 2,000km에 달하는 상수도를..

아직도 그대로 쓰고 있을 정도로..

로마는 우마차뿐 아니라 물길까지도 견고하게 만들어 쓰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의 영향을 받은 유럽 여러 나라들은..

지금도 가로 직경10cm 정도와 세로 길이40cm 정도의 돌들을 땅에 촘촘히 박아..

포장도로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2000년 전에 언덕은 깎고 골짜기는 메워 건설한 로마의 우편마차길이..

현재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로마시대의 길은 대략 15km의 방대한 길이였다고 합니다.

 

인간은 반드시 생명이신 하나님을 만나야만 영생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도 길이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각고의 노력을 다하여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 나선다 해도..

하나님은 간단히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이 자기의 노력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성경이 많이 말씀하고 있지만..

오늘 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 나서는 헛된 수고를 줄기차게 하고 있습니다.

그가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주시지 아니하면..

결코 그를 만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무턱대고 찾아 나선다거나..

없는 길을 만들어서 그를 만나고자 하는 노력을 경주하는 자들이 무수하게 많습니다.

지금도 어떤 이들이, 지성이면 감천이라면서..

하나님이 제시하지 않은 길을 가고 있으나..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자기 생각대로 길을 만들어서 그 길을 가면 만나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피를 흘리심으로..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시고 죽는 순간..

성소와 지성소를 갈라놨던 휘장이 저절로 찢어져 둘이 되고..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길을 여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령이 사람들 마음을 지성소 삼아 좌정하심으로써..

비로소 임마누엘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람마다 육신의 때를 사는 동안 주를 사모하며 길 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더욱이 세상길이 끊어진 듯 고통스러울 때마다 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길이 끊어져야 길 되신 주님이 나타납니다.

인생길이 험악하고 캄캄하여 앞이 보이지 않을 그때..

빛 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께로 낯을 향하고 사모하는 심정으로 그를 바라보면..

밝고 빛난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사울 왕 때에는 여호와의 법궤(영광)가 하찮게 여김 받았습니다.

그에 비해 다윗 왕 때에는 하나님의 법궤(영광)를 귀히 여기고 소중히 여겼습니다.

다윗은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때 너무 기쁜 나머지..

속옷이 보이는지도 모르고 궤 앞에서 춤을 추며 기뻐하였습니다.

오늘 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은 주와 복음을 즐거워하며 기뻐하고 있습니까?

에스겔은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들어오시는 장엄한 광경을..

환상으로 바라보면서 황홀해 하였습니다.

세상의 요구와 육신의 요구에 눈이 멀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도 그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게 바로 눈뜬 소경과 다름없는 모습입니다.

기도를 하는 이유와 기도의 제목이 수상쩍기가 한이 없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예배당에 앉아서 그런 기도를 하는 모습은..

주님 앞에 심히 민망스럽고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영안이 열려서..

저 셋째하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 하는 참된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에 관한 것들을 기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