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염소요~
사람이 선악과를 먹은 후부터..
[선하다 악하다]또는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선악을 판단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고 잣대가 되어있었는데..
선악과를 먹은 후에는..
기준이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내어버리고..
잣대가 [자기 마음]으로 바뀌어버린 것입니다.
지도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백성이 방자하게 되어..
제 마음대로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하나님이라 칭하고..
그 죄의 자리에 앉아서 먹고 마시며..
악의 현장에서 즐거워하여 춤추고 놀았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교회는 다니면서도..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배치되는 어떤 행위들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은 없고 한없이 행복을 느낀다면..
그 죄악을 행하는 일이 있고나서 괴롭고 고통스럽지 않다면..
마음에 찔림이 없다면..
말씀을 들으면서 통회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그는 지금 분명히 망하는 길로 달음질하고 있는 것입니다.(고전10:1-11)
거울은 나의 모습을 한 점 오차도 없이 정확히 비추고 있는 것 같으나..
실은 좌우가 바뀌어 보이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주님의 좌우편에 늘어서 있는 자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좌측에 있는 자들에게 주님은..
[염소와 같은 자들]이라고 하시면서 가혹한 저주를 내리셨습니다.
우측에 서 있는 자들에게 주님은..
[양과 같은 자들]이라고 칭하시고 상상을 초월하는 좋은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우리나라 처럼..
좌우익이 갈라져 피비린내 풍기는 싸움질을 하는 나라도 드믈 것입니다.
우익이 무엇입니까?
이웃이 비참한 몰골이든 말든 나만 잘 먹고 살겠다는 자들로..
그 이웃의 눈에 비친 자들입니다.
그럼 좌익은 무엇입니까?
착취를 당해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느끼는 자들로서..
못나고 변변치 못하고 대책 없는 자들로 그 이웃의 눈에 비친 자들입니다.
비틀어진 상류사회가 패거리를 형성하고..
이웃의 고통을 못본체 하는 우측의 그 누리던 자들이..
하나님 앞에 서는 날에는 좌측으로 바뀌어 서게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좌측에서 고난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애쓰는 자들이..
그날에는 우측에 서게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측에서 모든 좋은 것들을 누리며 살고 있는 자들 중에..
좌측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형제들을 은밀히 돌아보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날에도 역시 우측에 서게 될 것입니다.
지금 좌측에서 고난 중에 원한에 사무쳐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하는 자들은..
그날에 또다시 좌측에 서서..
참혹한 저주의 판결을 받는 자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염소와 양은 서로 비슷하게 여겨지면서도..
상당히 판이한 면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풀을 먹고 사는 것도 같고..
되새김질 하는 것도 같고..
울음소리도 같습니다.
다른 점은..
염소는 암수 모두 날카로운 뿔을 가지고 있으나..
양(羊)은 숫양에게만 뿔이 있으되..
그 뿔은 날카롭지도 못하여..
공격용으로 사용할수도 없고 방어용으로도 쓸 수 없습니다.
염소는 날카롭고 뾰족한 뿔이 전면을 향하여 돋아납니다.
그러나 양은 양 옆에 둘둘 말리는 형태로 뿔이 자라기에..
공경용 무기도 되지 못하고 방어용으로 사용할수도 없습니다.
또 염소의 꼬리는 아주 짧습니다.
그러나 양의 꼬리는 기다랗습니다.
풀을 먹는 습성도 판이하게 다릅니다.
염소는 풀의 끝부분이나 중도막을 뎅겅 뎅겅 잘라먹고 바삐 돌아다닙니다.
그러나 양은 풀의 밑둥까지 남김없이 싹둑 싹둑 잘라먹습니다.
염소는 자기가 먹고 싶은 풀, 즉 선호하는 풀이 있으나..
양은 좋고 나쁘고를 가리지 않습니다.
눈앞에 닥치는 대로 먹어치웁니다.
염소는 먹는 것도 해찰을 부리며 먹는 일에 열중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양은 먹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듯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먹습니다.
얼마나 먹는 일에 열중하는지..
한참을 풀을 먹고 나서는 머리를 늘어뜨리고 숨을 헐떡거리며 쉽니다.
모든 양들이 한결같습니다.
염소는 사람이 가까이 가면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화들짝 놀라 도망칩니다.
그러나 양은 사람이 다가가도 그저 가만히 있습니다.
번쩍 들어 안아도 그저 가만히 몸을 맡겨둡니다.
염소는 멀리 앞을 내다보며 사방을 살펴 적의 동태를 파악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양은 눈이 어두워 눈앞의 것만 보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양에게는 목자가 필수적으로 꼭 있어야 합니다.
[목사가 그래?]..
[예수 믿는 집사가 그랬어?]..
[아니 장로가 그 모양이야?]..
[교회다니는 인간이 왜 그 지경이야?]..
그렇게 공격해 와도 맞받아쳐 공격하거나 방어하는 소릴하면 안됩니다.
[나 염소요!]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변화산 정상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담소를 나누는데..
구름이 저희를 가리고 오직 예수만 나타나셨던 것처럼..
말씀 앞에 사람의 사적인 견해는 즉시 사라져야 하고..
냄새나는 자기의 사상이나 감정들은 몽땅 감추어져야합니다.
그리만 되면, 그날에 그분 앞에 섰을 때..
선악을 판단하시는 그분의 칭찬이 한없이 그에게 쏟아져서..
영광스러운 우측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 땅에서도..
보물창고의 열쇠를 손에 쥐고 모든 좋은 것들을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보물창고의 문은 무겁고 견고하게 보이나..
말씀을 마음에 품고 지키어 살면 쉽게 열립니다.
보물창고 문이 견고하게 보여서..
정문을 피해서 개구멍으로 들어가면 도둑이 되고..
정문 옆 담이 낮게 보여서 뛰어 넘으려 하면 강도입니다.
개구멍살이나 담을 뛰어넘는 일이 쉬워보이나..
바람을 붙잡으려는 것처럼 헛된 노력일 뿐입니다.
오직 말씀을 마음에 품어 지키고 살게 되면..
그것이 강력한 열쇠가 되어..
육중한 보물창고 자물쇠는 의외로 쉽게 열립니다.(신28: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