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하나님!

노력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은 아닙니다.

순악질 의자왕 2005. 7. 10. 21:29

쥐가 코너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도둑도 쫓으려면 도망칠 구멍을 남겨두고 쫓아야한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아람나라의 왕 벤하닷은..

이스라엘 나라를 한주먹거리도 안되는 약소국가로 여기고 철저히 짓밟고자 마음먹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총 군사병력이 7,000명뿐인 작은 나라에 불과하였기 때문입니다.

벤하닷은 교만하기 이를데 없는 자였습니다.

1905년에 대한제국과 일본국간에 체결되었던 이른바 [을사보호조약]이나..

미국과 대한민국 간에 체결되어 있는 현 [한미행 정협정]은..

강대국과 약소국 간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전형적인 불평등 조약입니다.

그것처럼 벤하닷은 주변 30여 개국의 약소국들과 불평등조약(군사동맹)을 체결하고..

이스라엘을 집어삼키기 위해서..

마침내 이스라엘에게 말도 안되는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즉 이스라엘왕 아합에게 전권대사를 보내어 말하기를..

[당신나라에 있는 모든 군사 경제 사회문화를 비롯한 모든 것과]..

[당신의 처들과 자식들 모두 다 내 마음대로 하겠소!]..

이스라엘과의 군사력대비 거의 20배에 달하는 무력을 앞세워서..

벤하닷은 오만방자한 행보를 보이며..

30명의 동맹군 왕들과 함께 실로127,000명의 대군을 동원하여 이스라엘을 침공해왔습니다.

12만7천명 대 7천명!

이 전쟁은 인간적으로 해보나마나 결과가 뻔한 싸움이 아니겠습니까!

북이스라엘 왕 아합은 그야말로 고양이 앞에서 코너에 몰린 쥐 꼴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합은 정치와 외교의 귀재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번영과 안정을 위해서라면 정략 결혼(政略結婚)도 마다하지 않은 인물이었고..

계산과 결단력이 뛰어난 인물이었으며..

지극히 현실적인 사상과 가치관을 지닌 인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외적(對外的)으로나 대내적(對內的)으로도..

협상의 대가로 불리기에 충분한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그도..

괴이하게 돌아가는 시대적 상황이나 냉혹한 국제정세의 회오리바람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밤을 새워 고민하고 머리를 굴려보았으나..

난국을 타개할 길을 찾지 못한 그가..

국가원로회의를 소집하여 장로들의 고견(高見)을 청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의 인간적인 무능(無能)함에 대한 고뇌(苦惱)를 엿볼 수가 있습니다.

그는 인간적으로 똑똑하고 명석했으며..

때때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도 하였으나..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일생동안 현실주의에 의한 우상숭배에 빠져 하나님 앞에 범죄로 일관하였으나..

하나님은 북이스라엘 열 지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구원을 선포하심으로서..

여호와가 진정한 하나님임을 나타내셨습니다.

그것은 아합이 사랑스러워서도 아니었고..

아합이 기도한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아합이 아무것도 한 일이 없고 오직 하나님 앞에 밥먹고 죄지은 일밖에 없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10지파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교만이 머리끝까지 솟아오른 아람왕 벤하닷을 철저히 망하게 함으로서..

하나님이 자신의 위엄을 보이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주변에서는 언제든지 기적은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사람이 잘하건 잘못을 하건 그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기적은 언제 어느 때나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계란과 바위가 부딪히면 물리적으로 틀림없이 계란이 깨어지게 되어있으나..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현장에서는 계란으로 바위를 깨부수는 일들이 종종 벌어집니다.

계란과 바위가 부딪혀서 계란은 멀쩡하고 바위는 산산 조각나는 사건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흔히 기적이라고 일컬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현장에는 기적은 언제나 상존(常存)합니다.

아합이 하나님께 잘 보여서 기적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서 일어난 기적일 뿐입니다.

불과 7천명의 병력으로 10만 명의 적군이 전멸(全滅)을 당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왜군을 섬멸한 것을 세계적인 전승(戰勝)이라고 평하나..

그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승리가 이스라엘에게는 이미 일어났었던 것입니다.

아람군과 그 30개 연합군 12만 7천명 중..

십만 명이 7천명의 이스라엘 군에게 격파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2만 7천명의 패잔병들이 [아벡]이라는 견고한 성으로 도피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보기에 견고하게 여겨지던 아벡성이 무너지게 함으로서..

나머지 2만7천명도 전멸하는 소름끼치는 기적을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벤하닷 만이 극소수의 호위병에 둘러싸여 간신히 본국으로 도망쳤고..

패전의 무서움에 전율하며 골방에 숨어 달달 떠는 초라한 몰골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합이..

말도 안되는 전쟁에서 승리케 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망각하고..

하나님께서 죽이시기로 작정한 벤하닷을 살려준 이유는..

위협적으로 떠오르는 신흥세력인 앗수르를 견제하는데 벤하닷을 이용하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아합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고..

타다만 막대기 같은 벤하닷을 의지하였던 것입니다.

믿음이라고는 없는 아합..

은혜를 망각한 아합에게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어 책망하셨고..

훗날 이스라엘은 결국..

그 두려워하던 앗수르에게 망하고 말았던 것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