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의 기도와 같이..
2024년 9월 29일 주일..
배역과 패역은 같은 것 같으나 다른 뜻입니다.
배역은 몰래 간음을 저지른 것과 같습니다.
패역은 드러내 놓고 간음을 저지른 것과 같습니다.
북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배역한 자들이고..
남 유다가 하나님 앞에 패역한 자들입니다.
북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간통행위를 들켜서..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한 채 처량하게 쫓겨난 것입니다.
남 유다는 간통이 드러나게 되자..
하나님 앞에 오히려 뻔뻔한 자세로 대들던 자들입니다.
이것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구구절절하게 기록하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열 지파를 규합하여 세운 나라입니다.
반역으로 시작하였다가 반역으로 마침표를 찍은 나라가 북이스라엘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지만..
그 신앙생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혼합주의적인 모습입니다.
여호와를 섬기는데, 하나님이 제시하신 규례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생각에 따라 신앙하며..
심지어 이방사람들의 우상숭배적인 요소를 슬금슬금 섞어서 종교생활을 하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가증한 몰골임을 선지자들이 책망하였지만..
전혀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선지자들의 심각한 경고가 전혀 먹혀들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반인륜적인 앗수르 제국의 침략을 받아..
북이스라엘은 처참하게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이 허무하게 멸망당하고..
온 세상에 흩음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하였으면서도..
남 유다는 그것을 반면교사로 삼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이방나라들이 우상숭배를 잘하여 저렇게 부강한 나라를 이룩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대놓고 무시하면서..
그들의 가짜 신들을 수입하여 섬기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선지자들이 무서운 징계와 저주를 말하며 경고를 하였으나..
남 유다는 오히려 선지자들을 괴롭히다 못해..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은 유다도 저주와 형벌로 분노를 폭발하시기로 작정하고..
바벨론을 일으켜서 유다를 침공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다는 온 세상에 수치와 모욕과 구경거리가 되어..
2천 킬로미터도 더 되는 먼 거리의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70년의 세월을 노예로 살아야 하는 신세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의 슬픈 역사입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고향을 떠나 원수 나라의 국민이 된 사람들 가운데 다니엘은..
목숨을 내놓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 9장은 죄악으로 얼룩진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무조건 떼를 쓰는 기도가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저지른 패역과 악행을 자복하며 사유하시기를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그는 여호와께는 긍휼과 사유하심이 풍부하심을 기억하고,..
주께서 공의를 베푸시고 주의 분노를 예루살렘에서 떠나게 하셔서..
찬송이 되게 하시옵기를 간절히 간청하는 내용의 기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응답으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하셨습니다.
바벨론의 포로생활은 70년으로 정하셨고..
600여년 후에는 예루살렘에서 끔찍한 사건이 있을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그것은 저 신구약 중간기 400년과 150년 전쟁과..
안티오커스의 성전을 더럽히는 만행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의 간절한 기도의 내용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습니까?
혹시 이 땅에서의 부귀와 영화를 간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소망을 이 땅에 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육신의 때를 건강하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누리는 데에..
우리의 기도와 인생길의 초점이 맞춰져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이 너무나도 힘에 부쳐서..
이것을 면하게 하여달라는 기도에 매달려있지는 않습니까?
사람이 어려운 문제에 부딪쳐서 몸과 마음이 허우적거릴 때에..
흔히 원망하고 비관하고 좌절하기가 쉽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이 오면 기도하기에 앞서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살펴 돌아보고..
옷매무새를 고처 잡은 후에 자복하고 회개하기를 선행하여야 합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부여잡고 기도에 돌입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말씀을 통하여 깨달음이 오고, 속 시원한 응답도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