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번으로 끝내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노력하면 하나님 앞에 온전할 수 있다고 믿고 삽니다.
그래서 기독교회의 초기에 유대의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설립한 이방인 교회들에게 나아가서..
[너희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였어도 율법을 지켜야 온전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온전히 지킬 능력이 없기 때문에..
율법으로는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율법아래서도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온전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것은 속죄제를 통하여서 잠시 동안 온전을 이루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속죄제는 한번 드리면 일생동안 다시 드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아래의 속죄제는 온전한 제사가 아닙니다.
온전하다는 말은 ‘흠이나 결점이 없이 지극히 정상적이다’라는 뜻입니다.
완전하다는 말 역시 ‘흠이 없고 모든 필요한 것을 갖추어 결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행위로 온전함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셔서 그로 하여금 십자가를 통하여..
사람들의 모든 죄 문제를 단번에 담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은 사람이 육신의 때를 살면서 발견되는..
여러 가지 죄를 위하여 또다시 제사드릴 이유가 없게 되었고..
사람이 자기에게서 죄가 발견될 때마다 그분 앞에 고백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사건은 인간의 죄 문제를 한 번에 완전하게 끝내신 것이 됩니다.
사람이 행위로 온전해진다거나 완전해질 수는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사람이 할 수 없는 그것을 하셨습니다.(히10:9-14)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너는 내 앞에 완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아브람이 ‘엎드렸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자기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율법적인 생각으로 해석하여서..
‘자기 행위를 완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무능한 인간에게 어떤 좋은 것을 기대하지 아니하십니다.
‘너는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아브람이 보인 행동을 눈여겨 보면..
‘완전한 모습’이 어떤 것인지 확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엎드린 모습’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엎드려야 완전한 모습입니다.(창17:1-3)
율법아래의 속죄제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드린 영원한 속죄제의 그림자였습니다.
그림자나 모형은 온전하거나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잠시 있다가 스러지는 안개와도 같은 것입니다.
실체가 나타나면 그림자는 자기 사명을 다한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아들을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셔서 피 흘려 죽게 하시고..
그 피를 믿는 자들을 ‘믿음으로 거룩케’하셨습니다.
인간의 행위로 거룩하게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아들의 피 값으로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이 사실을 믿는 자들을 온전케 하셨습니다.
무엇이 온전케 하였습니까? ‘믿음’이 온전케 했습니다.(히10:14)
이 세상에서 가장 고매한 성품과 인격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이 감동하시면 사람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성령이 사람 마음에 좌정하시고 사람과 함께하셔서..
육신으로는 할 수 없는 그것을 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께 마음을 내어드리면..
하나님이 그 마음에 그리스도의 피를 뿌려 거룩하게 하시고..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 되게 하십니다.
두렵고 떨리는 율법을 기록한 돌판을 궤에 담아 지성소에 두시고..
그곳을 ‘성전’이라고 일컬었습니다.
성령이 오신 후에는 사망을 가져오는 두렵고 떨리는 율법으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새 언약으로써 생명의 성령의 법을..
우리 마음에 두고 우리 생각에 기록하셨습니다.(롬8:1-2, 히10:16)
사람은 짐승과 다릅니다.
짐승에게는 사람에게 있는 도덕이나 윤리 등 생활의 어떤 규범이 없습니다.
돌고래는 영리하기는 하지만 여러 마리의 수컷 무리가 공동으로 작당하여..
새끼 딸린 암컷에게서 그 새끼를 떼어 익사시킵니다.
집단 강간을 자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에는 자기를 짐승수준으로 끌어내리고 본능에만 충실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짐승의 마음을 갖은 것처럼 그와 같은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의 양심으로는..
그런 짐승과 같은 짓을 못하게 법으로 강제해서 그런 짓을 하지 않는 게 아니고..
거룩한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안하는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이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자들은..
하늘의 신령한 은혜 속에서 성령의 고품격의 인품과..
그리스도 예수를 닮은 긍휼과 자비와 사랑으로 육신의 때를 살아야 합니다.
그런 생활은 사람의 각고의 노력으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에 따라 말씀에 착념할 때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런 생활을 위하여 예수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