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하나님!

루스벨트나 처칠이 히틀러하고 뭐가 다른데?

순악질 의자왕 2017. 8. 11. 20:02

세상 정치에는 권모술수가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집단입니다.
그래서 편법과 거짓과 사기가 난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그러한 세상정치와 같은 놀음을 하지 말아야 할 터인데..
이상하게도 교회정치에서도 그와 비슷한 구석이 종종 발견되고 있습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회 최고 의결기관인 총회가 그렇고 그 산하의 노회가 그렇습니다.

 
짐승은 먹고 살아남기 위해서 날마다 사투를 벌입니다.
초식동물들은 맹수들에게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합니다.
맹수들은 사냥 성공률이 형편없이 낮기 때문에..
어쩌다 잡은 먹이에 대한 자비나 긍휼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사람은 이러한 짐승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인생의 기본적인 가치와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정해 놓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어떠한 환경에도 기준이 변함없는 절대적인 진리..
그리고 상황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는 비 진리가 세상에서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국가와 세계를 경영하는 세상 정치인들의 사악한 세뇌교육에..
비 진리를 진리로 착각하고 거짓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의 통치자들과 정치 지도자들과..
그들의 편에 서서 후세들을 가르치는 선생들 중 일부가 그렇습니다.
그들의 가르침..
이를테면 루스벨트와 처칠은 훌륭한 인물, 존경해야 할 인물들로 묘사하고..
히틀러는 흉악한 자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눈을 열어주는 교육이..
자라나는 세대에게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정치인들과 통치자들의 입맛에 따라 선과 악이 극명하게 묘사되고 있지만..
그것은 절대적 진리가 아닙니다.

 
루스벨트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약소국들을 생지옥에 떨어뜨린 자입니다.
‘조선은 일본이 먹어라! 미국은 필리핀을 먹겠다!’
‘그러므로 서로 간섭하지 말자’ 이것이 가쓰라-태프트의 밀약입니다.
루스벨트의 필리핀 침략으로 전쟁이 터져서..
100만 명의 필리핀인들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처칠의 영국은 1942년 미안마를 놓고 일본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일본이 이겨서 미안마를 먹어버리자..
인도마저도 일본에게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던 처칠은..
벵골의 쌀을 마구잡이로 쓸어 담아 가버렸습니다.
이렇게 영국이 벵골지역의 쌀을 수탈해가는 바람에..
당시 인도인 700만 명이 굶어죽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탁월하다는 정치가의 전략정책 하나가 이렇게 큰 비극을 낳았습니다.
자 이렇게 놓고 볼 때 루스벨트나 처칠이 히틀러보다 나은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은..
육신이라는 그릇에 비 물질인 영혼을 담아두고 물질세계에서 사는 존재입니다.
그들 가운데서 어떤 이들은 짐승처럼 땅만 바라보며 살고 있고..
어떤 이들은 마음을 저 하늘에 두고 영적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선생은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 되어 있다’고 설파함으로써..
영혼의 세계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고후5:1-10)
진리는 이것입니다.
인간의 육신의 때는 많이 살아봐야 100여년인데..
영혼의 때가 도래하면..
이 물질세계와는 차원이 다른 영원한 세계가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보내셔서 인간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그 세계로 인도하셔서 그 나라를 상속받게 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약속을 굳게 믿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진리에 서서 참된 기준과 그 올바른 가치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아름다운 목적을 두고 육신의 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인들의 세뇌교육의 틀을 깨부수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들의 가르침이 진리가 아니고..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가르치는 성경말씀만을 진리로 알고..
이것을 기준삼아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며 그것을 실행에 옮겨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육신의 때를 살아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삐딱하게 하고 살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눈앞에 펼쳐진 현상이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는..
분명하게 파악하고 살아야 하고..
그럴듯한 가르침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확실하게 분별하고..
육신의 때를 살아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대기업들이 골목상권을 침탈하여..
약육강식의 잔인한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골에도 대형마트들이 곳곳에 들어서서 작은 상점들은 속절없이 무너졌습니다.
교회도 세상 적 현상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대형교회들은 쉽게 사람이 모여들고 작은 교회들은 쪼그라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 어느 여전도사님의 말 한마디가 신선한 충격을 던졌습니다.
자기네 교회에 잘 다니던 교인들이 어느 날 다른 큰 교회로 옮겨갔다는 것인데..
‘괜찮아요! 내가 전도한 교인들이 거기에 가서 교회생활 잘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내 할 일은 다 한 것 아니겠어요?’
‘뭐하러들 교인쟁탈전을 벌이나들 몰라?’
‘그날에 주께서 상급으로 심판하실 것인데’...
주께서 맡기신 일이면 내 일이 아니고 주님의 일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