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하나님!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면..

순악질 의자왕 2009. 9. 1. 21:32

오늘도 다소 파격적인 소릴 한마디 할까합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좀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으로 자유를 찾은 사람들에게 옴쭉 달싹 못할 족쇄를 채워놓고..

그걸 신앙이라고 가르치는 짓은 이제 그만 그쳤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종교 생활이지, 무슨 신앙생활입니까?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 저주받아서 그 삶에 불행이 찾아올 것이라고 하는 공갈은..

이제 그만 그쳤으면 좋겠습니다.

먹고 마시는 일에 족쇄 채우는 짓은 이제 그만 그쳤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선지국 먹으면 안 돼..

교회 다니는 사람은 술 마시고 담배피우면 안 돼..

교회 다니는 사람은 개고기를 먹으면 안 돼..

더구나 목사노릇 하는 자가 술 마시면 안 되고..

담배 피워도 안 되고..

목사노릇하면서 새벽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되고..

그런 목사는 목사 자격미달이라는 둥..

목사노릇, 장로노릇, 집사노릇을 하면서 성질부리면 못쓰고..

하나님께나 사람 앞에 예의범절을 잘 지켜야 하고..

구약의 절기를(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특히 월삭) 기억했다가..

때가 되면 지키는 것이 좋다는 둥..

이제라도 제발 그런 소리가 나돌아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죄 지으면 하는 일마다 잘 안되고..

모든 일이 막히고..

고약한 일들이 터지고..

심지어는 중병에 걸려 고생하다가 죽을 것이라고 하는 뉘앙스를 풍기는 가르침은..

이제 제발 좀 그만 그쳤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 마음 가는 대로..

마구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고 살라고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렇게 안 해도 일부러 그렇게 막장으로 살려고 하는 그리스도인은 없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수시로 넘어지고 자빠지고 유혹에 빠지고 그러는데]..

[더 이상 자유를 주면 방종에 빠져들 것이 뻔하니까]..

[어느 정도는 족쇄를 채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의 보편적인 양심에 비추어 타당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즉, 윤리와 도덕을 잣대 삼아서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비난을 퍼붓습니다.

그런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입에 재갈을 물리고..

자기에게 부여된 자유를 제한하는 모습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아름다운 일이나..

그것이 마치 사람의 노력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는 모습으로 비쳐져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소리입니다.
 

그동안 교회는 천 수백 년에 걸쳐 유구한 전통을 이루며..

각종 절기들을 지정해 놓고 있었습니다.

이교의 축제를 본떠서 없던 예수님의 생일을 만들어 지키고..

부활절도 만들어 지키고..

그것도 모자라서 구약에서 행하던 각종 절기들까지 끌어들여..

오늘날 교회의 년중 행사의 여러가지 프로그램에 접목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프로그램이나 행사가 없는 교회는 뭔가 문제가 있는 교회로 여깁니다.

자기와 조금이라도 다르면 이단으로 정죄하기 바쁩니다.

누구를 위해서 그래야 합니까?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폄론 받지 말라]고..

바울선생은  골로새서를 통하여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골2:16)

폄론이 뭡니까?

주의 보혈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자기들의 잣대를 들이대며 멋대로 정죄하고 심판하는 짓입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들이 왜 그런 것에 구애받지 말아야 합니까?

그런 것들은 우리 신앙생활에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은 실체가 아니고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집을 짓기 전에 설계사가 집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에 대하여..

구상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필요하면 축소 모형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집이 완성되면 모형은 더 이상 존재의 의미가 없습니다.

설계와 모형에 따라 집이 완성 되었는데도..

집주인이 완성된 집에는 별 관심이 없고 여전히 모형에 집착하고 있다면..

그것처럼 이상한 짓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잘 믿는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이상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떠버리며..

심지어 자랑스럽게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시간을 정해놓고 몇 시간씩 기도를 한다는 사람들 중에는..

영적세계에 대하여 놀라운 체험들을 하고 있습니다.

필자도 기도하다가 비몽사몽간에 신비로운 영적세계를 경험 한적이 있고..

경악할만한 하늘의 권세와 능력의 그 중심에 서서..

이웃들을 이롭게 하는 일에 쓰임받기도 했습니다만..

확실히 하나님을 향한 기도는 하나님 나라의 신비로운 능력을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나 신비로운 체험과 뭇사람이 경악할만한 권능과..

수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할 즐거운 일이 있었을지라도..

그것이 성경, 즉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반하는 것으로 발견되고 있다면..

그것을 헌신짝처럼 버려야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기도중에 자기의 본 것과 들은 것을 성경 위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 중의 하나가..

자기의 경험이 절대적인 잣대가 되고..

그 영적체험이 성경말씀과 배치가 될 때는..

말씀을 버리고 자기의 경험을 택해버립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교만이 무엇이고 겸손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속에 비수를 품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미소를 띤 얼굴로 부드러운 체 합니다.

오만과 편견이 속에 가득하면서도..

겉으로는 [부족합니다 죄인입니다]라는 상투적인 소릴 지껄입니다.

겸손을 가장한 교만입니다.(골2:18)

겸손이 무엇입니까?

내 경험과 능력과 지식이 아무리 탁월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정면으로 배치가 될 때는..

자기의 것들을 똥처럼 버리는 결단이 겸손입니다.

언어의 유희가 겸손이 아닙니다.

부드러운 말투가 겸손이 아닙니다.

교만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지식과 경험과 능력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우위에 두는 짓입니다.

그런 사람치고 기도하다가 귀로 들은 것이나 기도 중에 눈앞에 서 본 것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신뢰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머리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팔다리가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심각한 장애를 입은 것과 같습니다.(골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