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먹어야 먹일수 있습니다.
내가 어릴 때의 삶의 풍경들이..
그 희미해져 가려고 하는 그 기억들이..
아지랑이 처럼..
늙어가면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일이 요즘 들어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우와 세살 터울이다 보니..
어머니의 젖통을 아우에게 일찍(?) 빼앗기게 되어 자주 칭얼댔었는지..
나는 할아버지 품에서 지낼 때가 많았던것 같습니다.
문득 아른거리며 떠오르는 기억이..
할아버지께서 밥을 간장과 함께 씹어 내입에 넣어주셨던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종종 군것질꺼리로 나온 볶은 보리도 씹어서..
귀여운 손자 입에 넣어주셨던 것입니다.
지금도 귀에 날카로운 고모의 비명 소리들이 들리는 듯 합니다.
[아이구~ 저느무시키 드런줄도 모르고]..
[하여간 아버지도 참내~]..
나는 영문도 모른채..
고모의 카랑카랑한 고함소리가 무서워서 할아버지 등뒤로 숨었던 것입니다.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그 입에서 나온 것을..
이유식으로 맛있다며 먹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나는 고모나 누님이 수저로 떠 넣어주는 음식들은 도리질을 하며 안 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입을 가리키며 칭얼거렸다고 하는데..
할아버지의 침이 섞인 음식들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던 것입니다.
한때 나는 수십 마리의 비둘기들을 기른 적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는 산비둘기 새끼들을 높은 나무위의 둥지에서 꺼내다가..
새끼산비둘기 주둥이를 강제로 벌린 후에 불린 콩을 먹여서 길렀습니다.
처음엔 뾰족하던 비둘기의 주둥이가..
하도 강제로 벌려 밥을 먹이다 보니..
오리주둥이처럼 납작해져 가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차례 산비둘기 새끼들을 온갖 정성을 다해 길렀으나..
단 한번도 길들이는 데는 성공한 적이 없었습니다.
다 자란 후에 [이젠 되었거니~] 하고 놓아주면..
뒤도 안돌아보고 산으로 도망쳐버렸습니다.
너무나 허탈하여 여러날 동안 우울하였습니다.
그래서 산비둘기가 새끼치는 모습을 한번도 가까이서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한 20여 년 전에..
어릴 때의 일이 생각나서..
하얀색하고 푸른빛이 도는 회색 집비둘기 한 쌍을 얻어다가 길렀습니다.
까탈스런 성격의 흰색이 암놈이었는데..
데려다놓자마자 가출 해버렸습니다.
수놈 재색비둘기 홀로 남아 집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서..
잿빛 비둘기 한 쌍을 또 얻어다 놓았더니..
난리가 났습니다.
홀아비가 남의 아내를 자꾸 엿보는 것입니다.
비둘기는 한번 짝은 영원한 짝입니다.
사람처럼 애인을 두는 법도 없습니다.
제비처럼 여기저기 남의 집을 기웃거리며 씨를 뿌리고 다니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얼마 후에 새로 들어온 비둘기 내외가..
노란털이 숭게숭게한 새끼 두 마리를 깠습니다.
나중에 그것들 중 하나가 커서 홀아비의 아내가 되었지만..
너무나 신기하고 예뻐서 날마다 둥지를 들여다보고 만지작거리곤 했습니다.
어미는 새끼들을 해칠까봐 내 손을 콕콕 쪼면서 털을 일으키고 난리였지만..
예쁜 것을 어쩌겠습니까?
가만히 들여다보니 처음 며칠 동안은..
어린것들에게 입을 벌리고 목구멍에 있는 젖샘의 젖을 꺼내 먹였습니다.
새끼가 점차 자라가면서..
자기 몸보다 더 크게 늘어난 모이주머니를 하고 앉아있게 되었고..
나중에는 어미가 낱알들을 먹고 물을 마신 후에..
그대로 게워내어 새끼들에게 먹이는 것이었습니다.
먹이만 풍부하게 제공 된다면 집비둘기들은..
겨울에도 새끼를 친다는 것을 알아 낸 것은..
그것들이 온지 1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약 40일에 한차례 새끼를 치는데, 번식력이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봄에서 초가을까지는 새끼를 기르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으나..
겨울에 접어들면서 새끼들의 보온(保溫)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비둘기는 연한 풀도 잘 먹는데..
겨울에는 야채를 공급하기가 쉽지 않아서 그냥 돼지사료나 닭사료를 주었는데..
새끼들의 먹이쟁탈전을 구경하다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날개를 파닥거리며 고함을 있는 대로 내지르고..
어미의 부리의 양쪽으로 새끼들의 주둥이 둘이 함께 들어가서 난리를 치는 것입니다.
새끼들이 어느 정도 자라서 털이 나게 되면..
암수가 번갈아가며 먹이를 주는데..
봄부터 둥지를 수리해가며 새끼를 칩니다.
겨울쯤에는 둥지 높이가 만만치 않게 높아져서..
자칫 새끼가 둥지 밖으로 떨어지기라도 하는 날엔..
그대로 얼어 죽거나 굶어죽는 사고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비둘기도 다른 짐승들처럼 모성본능이 강하다고 여겨왔는데..
이상한 것은..
둥지를 벗어난 새끼에게는..
절대로 품어주거나 먹이를 주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둥지 밖에서 애처롭게 떨며 비명을 질러대어도..
어미는 둥지에서 꼼짝 않고 눈만 멀뚱멀뚱 한채..
둥지 안에 있는 새끼만 품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아비도 둥지 밖으로 떨어져 죽어가는 새끼에겐 전혀 관심이 없는듯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 품을 사모하는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그분에게서 좋은 것들이 나오는 것을 기대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오기를 그분은 바라십니다.
선물을 주시면서..
주신 선물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대할 때..
말할수 없이 즐거워하시고 기뻐하시면서..
더 좋은 것으로 먹이시고 사랑하십니다.
베드로선생을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간난 아이들 처럼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하셨습니다.
젖 먹는 어린아이같이만 되면..
사람에게 최고의 좋은 것들을 주시되..
공짜로..
거저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조건 없는 선물입니다.
세상살이하기에 힘겨워하는 교인들인줄 뻔히 아십니다.
그래서 목사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목사는 어쩌면 이유식을 먹이는 사람으로도 생각 할수 있습니다.
잘못 먹이면 치명적인 해악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중요한 직무를 떠 안은 자이기도 합니다.
잘못하면 나중에 엄중한 문책이 따른다고도 했습니다.
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쓴물을 먹이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야할 직무를 가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먹고 반쯤 소화시켜 꺼내 줄때..
열정적으로 덤벼드는 새끼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