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꿇는 법을 가르치세요!
흔히들 '인간은 불완전하다'고 말합니다.
그런 말을 함으로써 자기의 연약한 부분을 커버해 보겠다고 하는 의도이고..
또한 자신의 수치를 가려보겠다고 하는 얄팍한 자기합리화입니다.
누구든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이웃에게는 가혹한 것입니다.
자기의 죄성과 실수에 대하여 위로 받으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사람들 가운데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완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완전하라'는 말씀은 '완벽하게 행동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소리는 '엎드리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께 엎드려있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있습니다.
엎드리기만 하면 '심히 번성케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창17:1-2)..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후손이 잘되어 여러 나라를 이루게 하시겠다'고 하는..
더 좋은 약속을 주셨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노력할지라도 하나님의 수준에 도달할 수는 없습니다.
곧 한계에 부딪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그러한 한계를 처절하게 경험한 사람입니다.
자기의 무능을 구구절절이 느낀 사람만이 하나님 앞에 엎드릴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사람의 완전한 모습'이라는 소리입니다.
아브람은 자식을 두는 일에 있어서 처절하게 한계를 느낀 사람이었습니다.
흔히 연인 사이에서 '사모한다'는 소리가 오갑니다.
간절하게 원한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라고 시편을 통하여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모한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구분하여 사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사모함에 있어 그것이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초원은 늘 비가 내리는 곳이 아닙니다.
우기와 건기로 계절이 나뉘어져서..
건기 때가 되면 자꾸만 졸아드는 물웅덩이로 각종 동물들이 모여들기 마련입니다.
물웅덩이 주변 풀숲에는 사자가 웅크리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목마른 사슴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갈증을 참으면서 주변을 서성거리던 사슴은 마침내..
목숨을 걸고 웅덩이를 향해 용감하게 질주합니다.
'사모'란 이와 같은 모습을 의미합니다(시42:1-5)
아름답고 가치있는, 고품격의 인생을 살다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을 간절히 열망하였습니다.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격조높은 인생을 살기를 바라는 부모들은..
하나님께 무릎꿇는 법을 아이에게 가르쳤습니다.
성경에 무수히 나타난 사례를 다 열거할 수는 없는 일이겠으나..
오벳을 데려다가 기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교육시킨 나오미..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의 아버지 기스..
다윗의 아버지 이새 등등이..
자녀교육에 성공적인 케이스로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자녀교육에 실패한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제사장 '엘리'와 유다왕 '히스기야'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나오미는 며느리였던 룻이 보아스에게서 낳아온 어린아이를..
아들처럼 기르고 양육함에 있어서 경험자의 불타는 가슴으로 가르쳤을 것입니다.
이새에 대한 칭찬받을 만한 기록은 성경에 나타나있지 않으나..
다윗을 말할 때마다 이새를 들먹이고..
그리스도를 예언할 때도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오며]라고 말함으로써..
이새가 자녀들을 완전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지도한 아버지였음을..
우리는 유추할 수가 있는 것이며..
그가 또한 엄청난 복을 받은 자임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사11:1-10)..
기스는, 사사시대에 기브아에서 있었던, (저 례위인의 첩에 대한 악행으로 비롯된)
베냐민과 전 이스라엘 지파간의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전쟁에 의한 파멸로..
거의 회복불능(回復不能)의 지경에까지 소멸해가던..
그 베냐민 지파의 가장 보잘것 없는 가문의 가장 연약한 족장이었으나..
전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족의 반열에 오르는 영광을 맛본 사람입니다.
그 아들 사울의 초반 행적을 추적해보면..
그는 독실하고 겸손하며 순종적인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 엘리나 유다왕 히스기야의 행적과 그 삶의 정황을 살펴보면..
그들은 자녀교육에 실패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30세가 넘도록 자식이 없던 중에..
선지자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후사없이 죽는 것을 저주와 수치로 여겼던 그는 통곡하며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과거에 하나님 앞에 이쁜짓 했던 그 모든 것을 추억하여 보시고..
자기를 긍휼히 여겨주실것을 호소했던 것입니다.
기도응답으로 15년의 목숨을 덤으로 받음과 함께..
그 기간동안에 아들까지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행복했을 것이고 그야말로 금지옥엽으로 아들을 길렀을 것입니다.
사형선고를 받고 죽다 살아난 것도 감사한데, 아들까지 덤으로 주셨으니..
얼마나 이쁘겠습니까!
무슨짓을 해도 예뻐보였을 것입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은 거의 모든것을 소원대로 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아들은 자연히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로 자랐을 것이고..
하나님앞에 완전한데 나아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면도칼이나 식칼을 가지고 놀겠다며 달라고 떼를 쓰며 울부짖는 아이에게..
떼쓴다고 그것을 아이의 손에 쥐어주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앞에 엎드릴줄 아는 아이로 철저히 가르쳤더라면 복이 되었을 것인데..
히스기야는 아들을 [엎드릴줄 모르는 아이]로 길렀습니다.
유다 열왕 중에 최악의 왕으로 꼽히는 '므나쎄'가 바로 히스기야의 아들입니다.
어린이 주일을 맞이한 어른들은 어린이를 사랑할수록..
어린이들을 버릇없이 자라게 하지말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연습'을 시켜야합니다.
그것이 아이의 인생을 풍요롭고 복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완전한데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고..
그것이 아이로 하여금 큰 복을 받게 할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