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하나님!

무시하지 마세요!

순악질 의자왕 2005. 4. 26. 17:30

분재(盆栽)에 있어 우리 옛 선조들은..

기르기 쉬운 나무를 분재목(盆栽木)으로 사용하지 않고..

기르기 까다로운 나무를 분재하여 귀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아무데나 꺾꽂이를 해도 잘 사는 개나리를 천박하게 여겼고..

소나무나 대나무를 분재하려면..

온갖 정성을 다 쏟아야했기에 귀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싯딤나무는 다른 말로 조각목이라고도 하는데..

척박한 광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라고 합니다.

성경의 기록에서도 백향목은 귀하게 여겼으나..

싯딤나무는 아무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천한나무였습니다.

백향목은 단단하며 곧게 자라기 때문에..

건축자재로도 명성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방충, 방부효과도 뛰어났을 뿐더러..

조선 소나무처럼 뒤틀리거나 휘는 성질도 없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서 싯딤나무는 땔감으로나 쓰일 뿐..

건축자재로나 가구재(家具材)로도 쓰이기 어려운 천한나무였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릇에 음식을 담으면 식기(食器)가 되고..

침을 뱉어두면 타구(唾具)가 되는 것이고..

오줌을 담아두면 요강(要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하고 쓸모없는 싯딤나무로 법궤를 만들라고 명하셨습니다.

사람보기에 천박하고 쓸모없는 조각목으로 상자를 만들어서..

하나님의 양심으로 만들어진 율법을 담았더니 법궤(法櫃)가 되어..

하루 아침에 존귀한 물건이 되었습니다.

질그릇처럼 깨지기 쉽고 투박하고 볼품없는 사람 속에 예수를 담았더니..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을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양은 정한짐승이나 돼지는 부정한 짐승입니다.

소는 정한짐승이나 나귀는 부정한 짐승입니다.

천박한 나귀새끼였으나 예수님이 타시니..

사람들이 그 가는 앞길에 자기의 겉옷을 벗어 펴놓고 밟고 가라고 했습니다. 

 

평생 돌이킬 수 없는 육체의 고장을 안고..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장애인이라고 합니다.

겉으로 나타난 장애뿐만 아니라 속에 감추어진 장애를 안고..

남모르게 괴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팔다리가 고장이 나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팔다리는 정상이나..

콩팥이 기능을 상실해서 투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간질이나 혹은 정신장애로..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은 것입니다.

이들을 사회적약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사람들보다 몇 배의 가중(加重)된 고통을..

안고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의 사람들입니다.

지금 상류사회나 정부당국이나 이 사회에서 불편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정책적으로나 사회적 양심으로도..

장애인들에게 너무 많은 소외감을 안겨주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시행되고 있는 복지시책은..

복지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남부끄러운 수준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겪고 있는 현상을 바라보노라면..

상대적 빈곤감을 주체 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이 그들을 무시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무시하고 사는 삶입니다.

그들 속에 예수가 계시다면 그들은 존귀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장애인들을 타구로 여기지 말아야합니다!

장애인들을 요강쯤으로 여기지마세요!

제발.............

식기나 예쁜 커피 잔으로 봐주면 안됩니까?

예수님이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던 나귀새끼처럼..

좋은 일에 쓰임 받는 사람들인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장애인들은 정상인들을 가리켜..

[비(非) 장애인]이라고 호칭하지 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장애를 입은 것이 무슨 벼슬입니까?

장애인이 된 것이 무슨 대단한 자랑거립니까?

왜 멀쩡한 사람들을..

장애인이 못되면 바보라도 되는 듯이..

아닐비(非) 자를 써서 [비 장애인]들이라고 호칭하느냐 그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낮아지게 하시려고 장애인이 되게 하셨다면..

주변사람들이 학대해도 낮은 자세 그대로 있어야합니다.

낮아지게 하셨던 그분이 높이 들어올리시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하나님이 잠언을 통하여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잠18:12)..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 해놓고서 분수를 모르고 사는 사람을..

교만한사람이라고 합니다.

자기 자신의 무능함과 형편없음을 인정하고..

분수에 맞게 사는 사람을 겸손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에스더서를 통하여 교만했던 하만을 물리치시고..

지극히 겸손했던 모르드개를..

높이 들어올리신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에스더1-10참조)

 

과정(科程)은 버려진 듯이 비참하나 버려짐을 통하여 좋은 것들을 얻고..

좋은 것들을 얻은 후에 기고만장하여..

자기의 힘과 재능으로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하다가..

처절한 실패를 겪은 후에..

도망자 신세가 되어 산간오지에 숨어살 수 밖에 없던 모세를 생각해봅니다.

그 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자기 자신을 포기하던..

모세의 겸손을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이 겸손한 모세를 높이 들어 하나님의 좋은 계획의 도구로 쓰시고..

한 민족의 지도자로 우뚝 서게 하셨던 것을 생각해봅니다(행7:22)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낮추고 그 말씀을 경청하였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 들어 세계 모든 민족위에 뛰어나게 하십니다.(신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