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정체성을 지킴..
2022년 2월 13일
선진국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경제적 규모와 고도의 문화적 융성이 중요한 지표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당시 아브라함의 원 고향 갈대아 우르는 살기 좋은 도시국가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등 따습고 배부르면 엉뚱한 곳에 이목을 돌리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점점 마음에서 하나님을 몰아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선한 양심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곳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나오게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은 세계사의 중요한 부릿지 역할을 하는 지정학적 요충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내시고..
밧단아람을 거쳐서 가나안에 정착하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의 심오한 계획 속에서 나타나게 될..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모든 사람의 구원을 성취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세계 어느 곳이든 마찬가지이지만..
갈대아 우르나 가나안 지역도 역시 우상숭배가 만연한 곳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훌륭한 점은 우상숭배가 만연한 지역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살면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집안의 전통을 버리지 아니한 생활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데라에 대한 기록은 여호수아서 24장에 간단하게나마 기술하고 있는데..
‘데라는 강 건너편에서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데라가 여호와 신앙을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가 버렸던 것입니다.
데라의 아들 하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성경에는 없으나..
다른 책에는 하란에 대한 약간의 내용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그가 아버지 데라보다 먼저 죽었다는 이야기만 있을 뿐..
어떤 사건이 있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만..
요세푸스의 책과 유대의 전승에 의하면..
아브람이 자기 아버지 데라의 우상숭배를 역겨워했다고 하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고..
크고 작은 우상들을 때려 부수거나 우상창고를 불 질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란이 그 불을 끄러 들어갔다가 타죽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편에서 생각해 본다면..
부친의 가업을 불질러버린 아브람은 후레자식이고 하란은 효자자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하란이 악한자이고 아브람은 하나님의 속을 시원하게 해드린 의인입니다.
온갖 모욕적인 비난과 공격을 당하고 있는 아브람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창12:1-3)
아브라함이 가정총무이자 총 지배인인 청지기 엘리에셀을 불러서 사명을 맡깁니다.
환도뼈 밑에 손을 넣고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맹세를 시킵니다.
환도뼈 밑이라 함은 생식기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나의 생식기를 확인해라 분명히 정상적인 생식기이지 않느냐!’..
‘네가 나의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도망칠 경우에는 내 자식이나 손자가’..
‘반드시 너를 찾아가서 복수할 것이니라.’ 그런 뜻으로..
사타구니 아래에 손을 넣어 확인하라는 뜻입니다.
가나안 지역의 사람들은 모두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종족들이므로..
저들 가운데서 며느리를 구해오지 말고..
하나님을 섬기며 그 아름다운 전통을 간직하고 있을 동족들 가운데서..
며느리를 구해오라는 것입니다.
엘리에셀도 역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주인이 맡긴 사명을 감당키 위해서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기도합니다.
기도의 내용에 어긋남이 없이 톱니바퀴의 아귀가 잘 맞아떨어지듯이..
상황이 기가 막히게 엮어지고 돌아가서 마침내 밧단아람 땅의 나홀의 집에 당도하여..
부두엘의 딸 리브가를 만나 그녀를 데리고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삭은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죽기까지 복종하는 모습이 예수그리스도와 똑 닮았습니다.
리브가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모형입니다.
여자는 자식을 낳아야 복입니다.
20년 가까이 살면서도 자식을 두지 못해서 안타까운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이삭이 리브가를 위해서 여호와께 기도하였듯이..
지금도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교인이 전도를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수치스러운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심정이 되고, 이삭의 아내 리브가의 심정이 되며..
야곱의 아내 라헬의 심정이 되고, 사무엘의 모친 한나의 심정이 되며..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의 심정이 되고..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의 심정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수십년을 교회생활 하면서도 전도하여 그리스도의 사람 하나를 길러내지 못하였다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 면목도 없고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전도를 못하면 전도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돈을 보내어서..
협력자, 조력자 노릇이라도 하여야 마땅합니다.
선교사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선교사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연보하는 일은..
그나마 영혼의 그날에 주께로부터 칭찬들을 일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얼마나 자식을 두고 싶었는지..
그 몸종 하갈을 남편에게 주어 자식을 생산케 하였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선조들은 자식을 두기위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