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길...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사랑하는 사이로서의 교제를 소원하십니다.
교제에 있어서 대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높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교제 중에..
대화를 통하여 상대방이 마음에 품고 있는 생각을 엿볼 수 있고..
애써 감추고 있는 의중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과의 대화를 좋아하십니다.
이 대화가 곧 기도입니다.
어떤 교과서 적인 형식이나 어떤 틀도 없습니다.
그냥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이와 친근히 대화하는 것처럼 하면 됩니다.
기도할 때에 사람은 흔히 자기위주로 이야기를 쏟아내기를 좋아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그 간절한 소원이 과연 그 사람에게 이로운 일인가를 먼저 살피십니다.
그리고 가장 안전하고 바른길로 안내하시고 이끄십니다.
때로는 마음의 감동으로 기도응답을 주시기도 하지만..
때때로 혼자서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와..
목사의 설교를 통하여서도 응답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찬송을 부르는 중에 하나님이 감동을 주셔도..
무시하여 흘려 떠내려 보내버리고..
성경을 읽다가 오는 감동도 애써 지워버리고..
목사의 설교를 통하여 책망하거나 감동을 하시거나 기도에 대한 응답이 와도..
자기의 어떤 욕망과 충돌이 되므로..
그것을 붙잡지 아니하고 떠내려 지나가도록 내버려둡니다.
겉으로는 거창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내걸고 있으나..
속에는 바알과 아스다롯의 망령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역겨운 자들을..
교인들에게서 뿐 아니라 목사들 중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거짓선지자가 왜 거짓선지자입니까?
겉으로는 거룩한 이름을 가졌으나..
속에는 바알과 아스다롯의 성품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바알과 아스다롯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재물에 대한 욕심과 명예에 대한 욕심과 음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성품’과 ‘바알 아스다롯의 성품’은 극히 대조적입니다.
여호와의 성품은 지극한 거룩하심과 풍부한 긍휼입니다.
바알 아스다롯의 성품은 음란과 잔인함입니다.
음란과 재물과 명예에 대한 욕심은 사람들의 큰 약점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일수록 이것들을 거머쥐기 위해서 못할 짓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라면..
이러한 사람의 약점을 교묘하게 악용하는 것이 바알과 아스다롯의 습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그토록 미워하시고..
자기백성들에게 우상숭배를 멀리하라고 간곡히 호소하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기약도 없이 시내 산으로 올라갔을 그때..
산 아래에서는 기다리다 지친 군중들이 아론을 겁박하였습니다.
유약한 지도자 아론이 군중들의 겁박에 못 이겨..
송아지 형상의 금신을 만들어서 군중들 앞에 세워놓았고..
군중들은 합창하듯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하였습니다.
아론은 한술 더 떠서 그 앞에 단을 쌓고 공포하기를..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금으로 송아지신상을 만들어 세워놓고 그 이름을 여호와라고 일컬으면서..
그 금 신상 앞에 번제와 화목제의 제사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았던 것입니다.(출32:1-6)
이러한 행태의 신앙행위는 전형적인 우상숭배의 예배행위입니다.
전통적인 여호와 하나님께 하던 예배의 행위가 아닙니다.
이름만 여호와로 일컬으면서 내용은 전형적인 우상숭배이며..
애굽의 잡신들을 섬기던 악습을 답습한 모습이고 바알과 아스다롯숭배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양의 제사를..
하나님 섬기는 훌륭한 신앙생활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극악무도의 패역으로 보시고 대노하셔서..
이들을 전부 몰살한 후 모세를 중시조 삼아 그 후손들 중에서 그리스도가 나올..
새로운 민족으로 다시 길러낼 생각까지 하셨던 것입니다.(출32:9-14)
겉모양은 그럴싸하고 내용은 역겨운 거짓 신앙과 가짜선지자들이..
때로는 사람들 눈에 매우 경건해 보이고 심지어 거룩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신앙생활을 한다면서..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응답을 받고도 성에 차지 않아서..
다른 응답을 찾는 사람들이 흔합니다.
그의 중심에 천국과 경건이 자리하고 있는 게 아니고..
그의 중심에 경제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가 마음 중심에 놓여 있고 생활의 구심점이 재물에 있다면..
아무리 입으로는 하나님을 찾고 예수가 자기의 왕이라고 떠버리고 있어도..
그는 이미 우상숭배자이며 바알숭배자이며 아스다롯 숭배자입니다.
재물에 눈이 멀면 인간이 짐승만도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발람과 같습니다.
때로는 당나귀도 보는 것을 사람이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수도 없이 많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했으면서도..
남의 불복종 한번을 못견뎌합니다.
그런 자들은 재물에 대한 강렬한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거짓예언도 서슴지 않습니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라고 했습니다.(잠18:12)
교만이 어디서 옵니까?
그것이 지식에서 옵니다.
무슨 지식이 사람을 교만으로 이끕니까?
어설픈 영적지식과 사람눈에 신령함입니다.
바른 소리를 하는 당나귀를 죽이고 싶은 인성은 가인의 길입니다.
발람과 같이 재물에 눈이 멀었다면 그는 이미 삯군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면 발람의 꾀도 불사할 양심입니다.(민31:16)
재물과 명예에 눈이 멀었다면..
그는 이미 고라와 같이 패역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발람은 바알의 선지자였습니다.(민22:41)
성경말씀에 분명히 대답이 나와 있는데도 연거푸 다른 대답 듣기를 원한다면..
그는 이미 발람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저분한 것들이 교인들의 마음에 자리하고 있다면..
그는 자신의 신앙을 다시 한 번 깊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살인죄 간음죄 도적질의 죄로 들끓는 욕망 때문에 분노가 치솟고..
사리판단이 흐려져서 짐승도 보는 것을 사람이 못 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