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신같은 장애인의 날이 밝았습니다.
그저께 고향집에 들렀다가 가슴아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을의 어떤 할머니가 농약을 마시고 세상을 등졌다는 소리였습니다.
90을 코앞에 둔 할머니가 농약을 마신 사연을 들으면서 성질이 기어올랐습니다.
우리 엄니보다 한살 더 많은 89세 되신 분이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마을 노인당에 날마다 출근하다시피 하던 분이었는데..
며칠 전에 아들이 [왜 안죽고 속썩이느냐]는 말을 해서 속상하고..
며느리는 눈도 안맞추려고 하고 말대꾸도 퉁명스럽게 한다며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노인들에게 있어서 그 아들은 천하에 쳐죽일 놈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머니의 말을 들으면 그 아들은 틀림없이 처죽여도 시원치 않을 불효자식이지만..
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나이와 건강을 외면한 채 일에 대한 욕심만 부리시는 우리 어머니의..
막무가내식 생활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오죽하면 그리 독한 소릴 퍼부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무말도 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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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고향집을 방문하였습니다.
뒤꼍 언덕에다 곰보배추와 개갑처리한 인삼씨앗을 심었던 것을 생각해 내고..
뒤꼍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집 뒤 언덕위에 있는..
채마밭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언덕길에 풀들이 노랗게 죽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인삼씨를 심어 놓았던 언덕이 파헤쳐지고 자그마한 밭이 일구어져 있었습니다.
노란 꾸지뽕나무 뿌리들이 뽑혀지고 널부러져 삐쩍말라 있었습니다.
기가막혔습니다......................
어머니의 소행(?)이 틀림없었습니다.
집근처에 제발 제초제를 뿌리지 마시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하였건만...
작년에도, 어렵게 구해다 심어놓은 가시오가피와 간 질환에 특효있는 약재에..
제초제를 뿌리셔서 몽땅 없애버리셨던 그 씁쓸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90을 코앞에 둔 노인이 농약통을 짊어지고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내리고..
언덕배기를 오르내리며 나무뿌리를 캐내면서 밭을 일구는 일이..
과연 자신이나 자손들에게 좋은 일인가 아닌가 하는 분별의 능력이..
어머니에겐 이미 사라져버린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목사님들과의 모임약속 때문에 집을 나서는데..
어머니가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하셨습니다.
온몸이 아파서 밤에 한잠도 못잤다는 것입니다.
가까운 동네병원을 제쳐두고 꼭 부여 시내에 있는 병원까지 가야겠다는 것입니다.
일에 대한 욕심을 조금만 버리면 노년이 편안할 것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씀드렸건만, 우리 어머니의 그 고집을 꺽을 놈이..
이 세상엔 없습니다.
일을 해서 올리는 소득보다 병원비가 훨씬 크고..
몸이 아파서 고생하는 것도 고생이지만..
병원에 가려면..
먼거리를 걸어서 버스정류장까지 가야하는 고생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한숨을 몰아쉬며 어머니를 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모임장소로 가는 의자왕의 마음이..
모시광주리 엎어놓은 듯 시끄러웠습니다.
어제는 병원에 입원하신 어르신들 머리 다듬어드리는 날이었습니다.
어떤 할머니가 얼굴이 묵사발이 된 채 머리를 다듬어 달라고 오셨습니다.
얼굴 전면이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머리를 깎으면서 [어쩌다 이리 크게 다치셨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옥상에 널려있는 빨래를 걷으러 갔다가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생긴일이라고 했습니다.
며느리가 늙은 시어머니한테 옥상의 빨래 걷어오라고 시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속이 시끄러워서 아뭇소리도 안하고 머리만 깎아드렸습니다.
수십년의 습관과 고정된 관념을..
말로 가르치거나 고함질러서 깨뜨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겉으로는 멀쩡한 것 같으나 멀쩡하지 않은 그러한 모습들은 분명 장애입니다.
긴장하면 손이 사정없이 떨려서 수저나 젓가락질이 곤란한 수전증도 장애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손이 떨려서 흔드는 것을 보면서 떨지말라고 야단칠수는 없습니다.
노력하면 손이 떨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속상해 하고 야단을 치는 것입니다.
고난의 세월 한평생을 잘 견뎌온 그 한가지만으로도 존경을 받아 마땅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치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 장애입니다.
노인들도 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약자군에 속합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돌봐주고 그래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은 합니다.
그런데 순간순간 기대치가 높다는 것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나쁜 생각들이 머리속에서 난무하다가 그것들이 말이 되어 튀어 나옵니다.
장애인 주차공간은 언제나 비워두어야 합니다.
일반인들의 주차공간이 부족하다고 해서..
비어있는 장애인 주차공간을 점유해서는 안됩니다.
일반인들이 장애인 주차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적발되면..
10만원 내지 20만원의 과태료를 물도록 법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장애인 관련 법규는 사문화 되어버렸습니다.
지키려는 사람도 희소하고 관련 당국도 의지가 너무 약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일반차량이 장애인 주차공간을 차지하고 있어도..
그 누구도 그런 장면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합니다.
[비어있는 공간에 잠시 좀 주차 했기로서니 그것이 무슨 큰 죄냐?]이러는 것입니다.
단속 권한과 의무를 짊어진 정부와 관련공무원들도..
인력이 부족하다느니, 시간이 없다느니, 지금은 근무시간이 아니라커니 합니다.
하긴 윗대가리들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하여 배려할 마음이 없는데..
쫄따구들이라고 별다르겠습니까!
장애인복지혜택을 바짝 줄인 이유를 들어보면 비웃음이 저절로 터집니다.
[가짜 장애인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복지예산을 줄였다]는 것입니다.
가짜 장애인들을 가려내면 되지 않겠느냐니까..
그럴려면 거기에 소요되는 예산이 어마어마 하기 때문에 예산확보가 어렵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무슨 공무원들만의 나라입니까!
아니면 우리나라가 토목공사하는 사람들과 건축업자들만의 나라입니까!
장애인 복지 예산을 팍팍 삭감해서, 사대강인지 死대강인지에 예산을 쏟아붓고..
이제는 전체 장애인들을 정밀 재 검사해서..
경증으로 분류된 장애인들은 복지혜택에서 제외하겠다고 합니다.
사는 것 자체가 정상인들보다 수십배의 노력과 고통이 요구되는 장애인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코딱지 만도 못한 정부입니다.
오늘이 장애인의 날입니다.
이제 언론풀레이로 장애인의 날 행사를 치르고 쑈를 벌일 것을 생각하면..
또 그꼴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을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합니다.
정부에 대해서도 기대치를 낮춰야겠습니다.
공무원들에 대해서도 기대치를 낮춰야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어딘가는 모르지만..
숨겨진 장애를 안고 있는 장애인들로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가족들이나 자신들이 장애를 입어봐야 장애인들이 겪고 있는 모멸감을 알게 됩니다.
자기들의 사소하게 여기고 있는 말과 행동들이..
주변의 장애인들에게 이중 삼중의 고통의 벽을 쌓아올려 주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도 장애인들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