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예수께서 그리스도로 오셔서..
모든 사람의 죄와 허물을 없이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가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것은..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자들을 놓아주려하심입니다.
이것은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하심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주려고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입니다.(히2:15-16)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들로 하여금 육신의 때에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이 받는 복을 함께 받게 하려고 그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것은..
특정한 사람들의 죄만 없애기 위함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의 죄를 없이하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라는 말 속에는 현재 예수 믿기를 거절한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로 오셔서 하신 큰 일을(십자가 대속) 믿지 않고..
한평생 자기의 생각에 따라 육신의 때를 살다가..
영혼의 그날에 만유의 대 주재이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을 그때..
어떤 판결이 내려져도 할 말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그들을 가리켜 ‘예복을 입지 않고 잔치자리에 들어온 자들’이라고도 하고..
‘유구무언인 자들’이라고도 일컬으시면서..
[결박하여 바깥 어두운 데로 쫓아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마22:12-13, 25:30)
잔치자리에서 쫓아내는 것 뿐 아니라..
주께서 그들을 지옥에 던지신다 해도 그 판결을 감히 누가 부당하다 하겠습니까!
육신의 때는 영혼의 때를 준비하는 때입니다.
그날의 영광을 위하여 지금 주와 복음을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아니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생활이 아무리 힘들고 따분하고 외롭고 걱정스럽고 부담스러워도..
불평이나 불만이나 원망 없이 해야 합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일생동안 변함없는 마음,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몸 된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성도를 섬기며..
신앙생활하기로 작정하였으면, 이제부터는 땅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 아니고..
장차 받을 상급을 바라보고 한평생을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명령으로 알고 살되, 자기 자신을 주와 복음의 전파를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쓰임 받는 일군으로 여기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이 땅에서 독실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고리타분하게 생각되고 세상사는 재미도 없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삶의 기준을 삼아 세상을 살다보면..
뜻밖에도 좋은 일들이 생활 속에서 종종 나타나기도 하고..
재미있는 일들도 심심치 않게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주께서 주신 고난이라고 느껴진다면 순종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인내로 고난의 기간을 견뎌내고 나면..
더 크고, 더 깊고, 더 넓고, 더 좋은 것으로 갚아주십니다.
땅에 사는 동안에도 갚아주시지만, 영혼의 때 그날에는 차원이 다른 상으로 갚아주십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인간적으로는 멋있게 생겼고..
임기웅변에 능하였으며 현실을 직시하여 타협과 협상이 무엇인지 아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쪽에서 살펴보면 아주 몹쓸 인간이었고..
물 타기의 명수였으며 주인의 의도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는 쓸모 짝이 없는 도구였습니다.
호텔에서 고급음식이라고 손님 앞에 음식접시를 내밀었지만..
주방에서 식탁으로 가져오는 동안..
못된 종업원이 더러운 침을 뱉어놓은 것과 다름없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가증한 자였던 것입니다.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자들이 더러 있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아서 수없이 외치고..
얼굴이 벌게지도록 강조하고, 간곡히 권하고, 눈물로 호소해도..
끝끝내 자기 생각과 자기 고집을 굽히지 아니하는 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그날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책임을 물으시고 책망하십니다.
육신의 때에 사울처럼 불순종하는 자들이야말로 영혼의 그날에..
초라한 모습으로 유구무언인 채 결박당하여 바깥 어두움에 쫓겨날 운명의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사울을 향한 사무엘의 고함지르듯 포효하는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면서..
신앙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습니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삼상15ㅣ22-23)..
대체 여호와의 목소리가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여호와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쏟아져 나옵니까?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사울 앞에서 소리 지르는 사무엘의 말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강단에서 목이 터져라 외치는 목사들의 설교입니다.
예수 믿는 교인들은 듣기 좋은 말만 들으려 말고..
때로는 듣기 거북하고 심기가 불편해질 만한 소리들도 마음을 열어 경청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