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세상에는 사람이 완전히 죽었다가 몇 시간 혹은 며칠 만에 살아났다는 주장이..
종종 있어왔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의식인지 무의식인지 모르지만, 무슨 누런 강을 건너는 도중에..
어디론가 떨어져서 다시 소생하였다고 말하기도 하고..
무슨 왕 같은 이 앞에 불려나갔는데..
‘너는 아직 여기 올 때가 아니니 어서 다시 가거라!’라고 해서..
퍼뜩 깨어났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는 곁에서 인도하는 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천국과 지옥을 두루 다니며 보고 들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이야기들은 다분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임으로..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절대적인 신뢰를 받기는 매우 어려운 것들입니다.
또 그들의 이야기들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전혀 객관적이지도 않고 성경의 가르침과는 동떨어진 것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실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선지자 엘리야의 때에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었는데..
선지자가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과부의 아들을 다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왕상17:17-24)
선지자 엘리사의 때에는..
수넴여인의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왕하4:18-37)
또 사람이 죽어서 매장하려는데, 갑자기 떼강도들의 침입함으로써..
장례를 담당하던 자들이 황급히 그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던져넣고 도망쳤는데..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으니..
곧바로 다시 살아나 일어서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왕하13:20-21)
그 외에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어서 온 집안이 술렁이고 있을 때..
예수께서 그를 다시 살리신 일(막5:35-42, 눅8:49-55)과..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은 것을 주께서 다시 살려내신 일(눅7:11-16)과..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시체가 부패하였으므로 악취를 풍기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일도 기록되어 있습니다.(요11:17-44)
이뿐 아니라 주의 제자 베드로는 욥바의 여제자 다비다(도르가)가 죽었음을 듣고..
룻다에서 황급히 욥바로 가서..
주께서 주신 권능으로 다비다를 다시 살린 일이 기록되어 있고(행9:36-42)..
이방인의 사도로 일컬어지는 바울선생은..
설교가 길어짐으로 창문에 걸터앉아 졸다 떨어져 죽은 유두고를..
주께서 주신 권능으로 다시 살려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행20:7-12)
이와 같이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그들의 다시 살아난 것을 부활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어도 그들은 또다시 죽었기 때문입니다.
가을에 나뭇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가 겨울을 지나서 봄이 오면..
산야에 초목이 다시 새싹을 틔우고 자랍니다.
거미가 동면에서 깨어나고, 벌들이 동면에서 깨어나고, 개구리가 동면에서 깨어나고..
달걀에서 병아리가 깨어나는 것들까지 들먹이며..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설명하려고 애쓰는 자들을 보면 딱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그런 자들이 목사노릇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애를 느낍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런 저급한 부활이 아닙니다.
그는 또다시 죽는 몸으로 부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영원한 생명의 근원입니다.
오직 그에게 붙는 자만이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그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존재로 부활하셨습니다.
문들이 닫혔는데도 홀연히 나타났다가 홀연히 눈앞에서 사라지는..
그러한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영으로 생각하였으나 그들의 눈앞에서 함께 음식을 잡수시기도 하셨습니다.
또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그런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제자들마저 부활하신 예수를 몰라보았습니다.(눅24:13-43)
그러므로 부활절에 계란을 삶아 나누어 먹는 역겨운 풍습을..
이제는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사정없이 쫓아내고 단호하게 몰아내어 버려야 합니다.
부활절에 계란을 삶아 나누어 먹는 풍습이 어디서 흘러들어 온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역겨운 짓을 스스럼없이 자행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시19:7)
율법에서 생명이 나온다고 오해할 수도 있으나..
율법에 자신을 비쳐보고 급히 그 앞에 엎드리는 자세를 취한 모습을..
그리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 그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기에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누구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엎드리면 그것이 하나님 눈에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에게 가까이 하면 생명과 복을 선물로 얻습니다.
육신의 때에 그를 사모하며 그 앞에 엎드리기만 하면..
생명을 선물로 얻어 좋은 것을 누리게 하십니다.
율법을 지키기 위한 사람의 노력으로 의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을..
[율법주의]라고 합니다.
율법에 자신을 비춰보니 너무도 황망하고 절망적이어서..
그 앞에 고꾸라지는 모습이 하나님 앞에 완전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죽었다가 다시 사신 예수를 바라볼 때..
그에게 있는 영원한 생명과 복이 물처럼 내게로 흘러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는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율법에 무너져 절망하고 그를 바라보고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
그에게 붙은 자들은 한번은 반드시 죽지만..
그가 부활하신 것처럼 반드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살아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