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세상말로 잘 나가던 사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서 비까번쩍하게 더 잘나가고..
국가와 민족을 이끌 대 선생이나 영도력이 있는 지도자가 되어..
뭔가 로마를 뒤엎고 세계를 제패할 인물이 되었다고 한다면 얼마나 멋있었을까요.
아마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도..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한다면서..
이러한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울은 예수를 만난 후에..
오히려 그 이름도 초라한 바울로 개명을 하고..
더욱 초라한 몰골이 되어 사람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를 잘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바울이 뭔가 잘못되었다고 여겼을 것이고..
바울의 연설을 듣던 총독 베스도는..
[바울아 네가 네 많은 학문 때문에 미쳤나보다]라고..
고함지르기도 했습니다.(행26:24)
바나바는 본명이 요셉이나..
교회에서의 그 위대한 행적 때문에 바나바로 더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는 교회의 전체적인 위기상황에서..
곤경에 처한 형제들을 건져내기 위해 아낌없이 사재를 털어버린 대장부였습니다.
그는 부유한 사람으로서 고생길이 훤한 전도여행을..
그것도..
바울처럼 모난 성격의 사람과 함께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던 인물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도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상류사회의 일원으로서 이름을 날렸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육신의 때는 영혼의 때를 준비하는 기간임을..
누구보다도 잘 간파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 십자가로 말미암은 복음..
즉 하나님의 생명과 복을 나눠주는 일은 분명 좋은 일임에 틀림없으나..
때때로 심각한 반대에 부딪칠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분쟁이 생겨서 파가 갈리고..
서로 다투다가 교회가 나뉘고 하는 문제들이 왜 생깁니까?
성경은 그 원인을 말씀에 불순종하기 때문으로 지적합니다.
말씀을 불순종하는 사람들의 배후에 누가 역사합니까?
원수 마귀입니다.
몇몇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자들이 일어나서..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선동하여 교회에 분란을 일으키는 일은..
어제오늘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이미 수천 년 전에도 있었습니다.(행14:1-7)
교회에서 목사를 쫓아내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을 때..
목사들은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주를 힘입어 할 말을 담대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갖가지 망신을 당하고 모욕을 당하는 일들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미 수천 년 전에도 믿음의 조상들이 당해왔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악독한 집사 장로들은..
이미 그 교회에서 떠나 다른 지방의 교회에서..
사역을 잘 하고 있는 목사를 훼방하기 위해..
그 지역까지 가서 사람들에게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짓을 자행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충동하여 위해를 가하기도 합니다.(행14:19)
대개 환란을 겪은 목사들은..
그 환란을 통하여 하나님이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하셨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하나..
어떤 목사들은 이미 당한 고난에 대하여 억울해 하며..
원망의 말을 쏟아내고..
악독한 일에 쓰임 받은 자들에 대하여 깊은 원한을 품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 된 대로 믿음의 조상들은..
환란을 당한 후에 풀이 죽어 숨어 지낸다거나..
목사 직분을 사임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힘을 내어 다른 곳으로 가서 목회를 계속하였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들은 가는 곳마다 제자를 꼭 길러내야 할 책무를 짊어진 자들입니다.
자기의 개인적인 제자가 아니라..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의 제자로 길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목사 자신이 예수의 제자로 자처하고..
제자가 되기 위해 오직 그의 가르침을 따라 살면서..
형제들을 예수의 사랑스러운 제자가 되도록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목회의 크고 작은 여정을 보고할 곳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그 보고할 곳으로는..
오늘날 시찰 회나 노회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행14:26-28)
제자라 함은 선생의 눈으로 볼 때 아름답고 어여쁜 모습이어야 합니다.
선생의 가르침에 제자는 절대적인 신뢰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선생과 제자의 사이에 돈이 개입되고 있다면..
그 선생은 진정으로 스승이 될 수 없고..
오직 지식장사꾼이 될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서 선생과 제자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자세여야 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
수많은 도사들이 깊은 산속마다 도사리고 있으나..
그들은 자기의 노력으로 길을 만들어 가려고 하는..
헛된 고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 십자가의 길은 미련하고 어리석게만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들을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에 매달아 찢어 흘린 피로 완성해 놓으신 그 길은..
구원을 얻는 자들에게..
모든 이론을 파할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입니다.(고전1:18)
목사가 자칫 범할 수 있는 실수중 하나는..
예수의 제자를 만들어 가기보다는 자기의 제자를 만들려고 하는 짓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무능함을 말하면서도..
제자의 등에 자기도 지지 못할 무거운 짐을 얹어주면서..
이것이 제자의 길이라고 강변하는 짓입니다.
세상에서 잘 나가는 것이 복이고 주님께 영광이 된다고 하는 가르침을..
서슴없이 던지는 선생은 사기꾼이고 지식장사꾼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은 세상 적 관점에서 볼 때..
망하고 실패한 것같이 여겨질지라도..
눈앞의 현상 그 이면에 숨겨진 하나님의 계획은..
크게 성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의 때를 준비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판단기준을 자기 자신이나 세상의 것에 두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두어야 합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망해보여도..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면 지금도 여전히 성공의 길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