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율법과 복음에 대한 정의를 바로 내리지 못하고 혼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복음을 말하다가 어느 틈에 율법으로 돌아가서 떠들고 있고..
다시 복음을 말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순간 율법으로 돌아서서..
그 율법을 기준삼고 잣대삼아 사람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교회에서 지도자노릇 하는 목사가 그러고 있으니..
그 교회의 장로를 비롯한 모든 교인들의 신앙이..
그렇게 흘러버리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율법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니 내면의 세계에서 정죄와 심판이 난무하여..
남에게도 칼질을 해대고 자신에게도 칼질을 해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고..
생활 속에서는 좋은 일이 자취를 감추게 될 뿐입니다.
목사라도 율법의 목적과 기능을 잘 모르니까..
강단에서 엉뚱한 소릴 씨부렁거리게 되고..
교인들은 그게 옳은 소리로만 알고..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도 못한 채 아멘을 합창하는 꼴불견이 연출되는 것입니다.
율법의 목적은 정죄이고 율법의 기능은 형벌입니다.
거기에서 생명이 솟아나오지 않고 거기에서 복이 흘러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으로는 의로운 자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단 한 가지를 범하여도 전체를 범한 것으로 간주되어..
저주와 형벌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을 깊이 공부하고 연구하면..
거기에서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과 선하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죄 없는 자를 죽여서 그 피 값으로 죄인들을 건지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게 속죄제입니다.
율법을 배우면 배울수록 자기에게서 죄와 악을 발견하게 되고..
그 형벌을 견딜 수 없어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됩니다.
광야에서 원망하다가 불 뱀에 물려 신음하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장대에 달린 놋 뱀을 바라보면 살았듯이 말입니다.
율법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구약을 전부 율법적이라고 여기고 있으나..
복음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은..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거기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발견하게 됩니다.
율법아래 있는 사람들은 도피성에 관한 내용을 읽으면서..
보복과 저주와 형벌만을 생각하나..
복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도피성에 관한 말씀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발견합니다.
아브라함은 율법아래에 있던 사람이 아니고 복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율법이 오기도 전에 이미 복음 안에 있던 사람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풍부한 사랑과 은혜를 발견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위대함을 발견하기에 앞서서 그의 인간적 나약함을 꿰뚫어 보아야 하고..
그의 복 받은 내용을 파악하기에 앞서 그의 어리석음과 못난 모습을 발견해야 합니다.
복음이 그의 삶에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거짓과 사기 치는 짓도 서슴없이 자행하고..
죽음을 무척 두려워 하던 야곱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위로받아야 합니다.
저들의 연약하고 못난 모습도 넉넉히 용납하신 분이 하나님 아버지신데..
예수 안에 있는 우리가 아무리 못난 모습으로 육신의 때를 살고 있어도..
용납 못할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윗 역시 율법시대에서 살았지만 복음이 무엇인지 알았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저지르는 온갖 나약하고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른다고 하여도..
다윗만 하겠습니까?
아무리 악을 행하기로서니..
간음을 저지르고 그것이 들통날까봐..
죄 없는 내연녀의 남편을 암살하는 악을 행하였던 다윗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자식교육을 개판으로 시켰어도 다윗의 가정과 비교가 되겠습니까?
자식이 아비를 죽여 버리고 왕위를 찬탈하려고 한..
압살롬 같은 자식을 두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우리 중에 누가 첩을 여럿 두어서 여러 여자들이 각자 자식들을 낳았으며..
그 자식들끼리 연애하다가 강간한 후에 증오하고 버린 일이 있으며..
그런 불미스런 일로 형제간에 살인을 저지르는 일이 있습니까?
또 우리 중에 누가 다윗의 아들처럼 옥상에 천막을 치고 백주대낮에..
아비가 데리고 자던 아비의 첩들을 강간하는 아들이 있습니까?
우리 중에 또 누가 목숨이 위험하다고 해서 구차하게..
미친 체 하면서 수염에 침을 질질 흘리는 굴욕적 모습을 보인자가 있습니까?
예수 안에 있는 우리는 그 어떤 죄를 저질렀어도 아브라함과 다윗보다는 낫습니다.
이게 다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의 희생으로 얻는 영원한 생명과 복의 선물입니다.
광야에서는 하나님이 성막에 계셨습니다.
가나안에 들어와서는 하나님이 솔로몬이 지은 붙박이 성전에 계셨습니다.
지금은 예수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셨습니다.
성령의 법은 율법을 무색하게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를 형벌할 법은 이제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 그가 우리의 모든 죄악을 친히 그 몸으로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이 장차 우리에게 부어져서..
우리가 그와 함께 영생하게 된 것입니다.
육신의 때에 예수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낸 만큼 그날에 상급을 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