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하나님!

없긴 왜 없겠습니까!

순악질 의자왕 2005. 10. 25. 08:49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를 이룰 수 있겠느냐’..

또는 ‘믿지 않는 자와 어깨를 같이하지 말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유다왕국의 여호사밧 왕은 뜨거운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으나..

우상숭배로 경제적 부흥을 이루고 주변국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주도해 나가고 있던..

북이스라엘 왕국과 좋은 사이가 되어서 상생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북이스라엘 왕 아합의 딸인 아달랴를 며느리로 맞아들임으로서..

지독한 우상숭배가 만연한 북왕국과 사돈관계를 맺는 실수를 범하였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경제적 파탄직전인 북한을 도우면서 남북 관계는 부드러워졌고..

옛날에 그 살벌했던 기운이 지금은 많이 감소된 것처럼..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은 정치, 문화, 경제, 사회적으로..

고무적인 발전을 이루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 눈에는 그것이 좋아보였겠으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막걸리 마신 후에 토해놓은 것처럼 더러웠을 것입니다. 

 

 

시돈국의 공주였던 이세벨이 북이스라엘 아합 왕의 왕비가 되어..

친정의 모든 세속 적이고 음란한 문화와 전통을 가져다가 온 나라에 뿌리내리게 하여서..

우상숭배의 나라로 전락시켰으며..

타고난 술수와 모략으로..

남 유다국에, 자기의 고약한 면면을 이어받은 딸 아달랴를 시집보냄으로서..

다윗의 후손이 하나님을 섬기며 나라를 다스렸던 유다 국에 쓴물을 머금도록 하였고..

후에 그 아달랴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정치적인 변고에 자기의 아들이 죽음을 당하자 미쳐버려서..

자기의 친손자들을 모두 죽여 버리고 스스로 왕 노릇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북 왕국과는 어느 정도 차별화된 신앙의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던 유다왕국은..

아달랴의 악독한 문화정책으로 인해 혼합주의가 득세하게 되어..

여호와 하나님을 우상들과 함께 나란히 놓고 숭배하는..

종교적 혼란의 도가니가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로 비롯된 우상숭배사상은 결국..

남 유다 왕국에까지 뿌리깊게 뻗쳐..

남 유다를 멸망으로 이끈 원흉이 된 셈입니다. 

 

 

신실한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결혼했던 요아스의 고모 여호세바는..

어린 조카들이 할머니에 의해서 학살을 당할 때..

젖먹이였던 조카 요아스를 훔쳐내어 유모와 함께 자기의 침실에 숨겨 6년을 길렀습니다.

그리고 일곱 살 되던 해에 왕으로 등극 시켰습니다.

아버지와 같은 고모부 여호야다의 지도에 따라 나라를 다스릴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고모부 여호야다 제사장이 늙어 죽은 후에는..

자기생각대로 나라의 대소사를 처리하고 다스렸습니다.

국정운영의 고문격이며 개인적으로는 신앙과 삶을 지도하던 어른이 별세해버리자..

요아스는 국내외의 복잡한 문제들을 처리함에 있어서 갈팡질팡하였고..

마침내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아람왕 하사엘이 쳐들어왔을 때 마침내 선명히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나라와 민족이 위기를 당했을 때 왕이 할일은..

먼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기도해야 할일인데도..

요아스 왕은 눈에 보이는  적을 무서워하여 지레 겁을 먹고..

무능한 자기의 생각대로..

엄청난 전쟁배상금을 미리 지불하고 전쟁을 끝냈던 것입니다.

그 전쟁배상금을 마련하는 방법은..

기가 막히게도 자기 할아버지 여호사밧 왕이 하나님께 드렸던 헌금..

자기 큰아버지 여호람 왕이 드렸던 헌물..

자기 아버지 아하시야 왕이 성전에 드렸던 예물들을 다시 빼앗아다가 지불했던 일입니다.

 

 

혹시, 요즘도 자기 가정이나 개인적인 문제들을 해결함에 있어..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분이 인도함에 따라 처리하지 않고..

교회에 냈던 헌금들을 돌려달라고 해서 그것으로 문제 해결을 하려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또 평소 헌금을 넉넉하게 했다고 해서 교회에서 권리주장을 하려는 사람은 없습니까?

자기가 냈던 헌금이 자기보기에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곳에 쓰여지고 있는가 살펴보고 감시하고..

시비걸고 따지고 들려는 사람은 없습니까?

자기가 낸 헌금으로 목사와 그식구들이 먹고 사는 것이기 때문에..

목사는 자기들에게 고용된 사람으로 생각하여..

자기들에게 목사를 해고시킬 권리도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까?

없긴 왜 없겠습니까!

요즘도 가끔 미친 개망나니 같은 교인들이 있습니다.

바친 헌금을 게워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목사가 자기 맘에 안 든다는 뜻입니다.

어떤 위기상황에 놓이게 된다든지 배알이 뒤틀리게 되면..

요아스처럼 자기 할아버지가 바친 헌금..

자기 아버지가 바친 헌금..

자기 형제들이 냈던 헌금과 헌물들을 돌려달라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늙은 어머니가 예배당 지을 부지를 헌물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얼마 후에..

아들이 갑자기 예배당 지은 대지 값을 달라는 것입니다.

시골의 그 순박한 목사님이 믿거라 하고 등기이전을 미룬 결과입니다.

더러는 액수로 따져 헌금을 많이 한 교인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인들의 헌금에 대하여..

비율이 아니라 액수로 따져 많이 드린 것에 감격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자기의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몇%를 드렸는가를 보시고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과부의 두렙돈 이야기에서 짐작할수 있습니다.

헌금은 일단 드렸으면 그것으로 관심을 끝내야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자기를 위해서는 알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헌물을 함부로 쓰고 잘못써서 망했던 비근한 예를..

우리는 사무엘상 1장을 통하여 확연히 알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와 교인들은 예수께서 내신 길을 바로알고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면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그 길을 왜곡시켜 가르치거나..

사사로이 해석해버리고 행동해서 나타나는 현상들은..

안티기독교인들을 양산해내는 공장들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스스로 내가 안티기독교인들을 만들어내는 기계는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면 되는 일입니다.

교인들은 목사가 그 식구들과 함께 먹고 사는 것에 불편함은 없는지 돌아봐야합니다.

목사는 먹고 살만하면 더 갖으려고 악쓰지 말고..

어려움에 처한 동역자나 또는 이웃이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요즘도 쌀통이 바닥을 보이고 기름통 가스통이 빈통이 되어..

끼니를 라면으로 때우는 목사네가 실제로 있습니다.

우상숭배를 먼곳에서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은 이웃을 돌아볼 여력을 찾지 못한 불쌍한 교인들이 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적당히 교회도 다니면서..

이 땅의 안일한 삶을 위하여 적당히 점도 치러 다니고..

돈이 된다고 한다면 기꺼이 배교도 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