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생활의 지침서..
대개의 사람들은 눈앞에 어떤 현상이 벌어질 때..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본질이 무엇인지 규명하여..
그에 맞게 대처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저 자기 주관적인 생각에 따라 판단하고 선언해버리는 것입니다.
수 십 년 전에 있었던 일을 하나 소개하면,
하루는 어떤 여집사가 나에게 확신에 찬 소리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목사님 암탉이 오래 묵으면 구렁이가 된대요!] 어이없는 소리였습니다.
내용을 파악해 보니 이웃집에서 몇 년 째 한 마리의 암탉을 기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배고픈 구렁이가 닭장의 작은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서 그 암탉을 잡아먹었는데..
닭이 구렁이의 뱃속으로 들어가자 구렁이는 들어왔던 구멍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닭이 소화될 때까지 하염없이 닭장 구석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집 사람들은 몇 년 묵은 닭이 구렁이로 둔갑하였다고 굳게 믿고..
닭 잡아먹은 구렁이에게 제사상을 차려놓고 큰절을 올리는 법석을 떨었던 것입니다.
그 한심한 꼴을 목격했던 더 한심한 그 여집사는..
입에 게거품을 물고 나에게 확신에 찬 어조로 기적이라며 떠벌였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4장에는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사역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거기에 선천적으로 걷지 못하는 하반신 마비의 장애인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경청하다가..
[일어나 네 발로 일어서라!]는 바울의 고함을 듣고 뛰어 걸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 그 광경을 목격했던 사람들이..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며..
소와 화관을 가지고 와서 바울과 바나바에게 제사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실상과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그들의 모습은..
실로 우스꽝스러운 광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실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바울과 바나바를 감동하시고..
그들의 입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고..
그 전하는 말씀을 경청하는 장애인의 모습 속에 믿음이 있는 것을 발견한 바울이..
큰소리로 믿음의 말을 쏟아냈는데 그 말대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뿌린 복음은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무리는 당연히 바울과 바나바가 섬기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엎드려서 경배하여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들이 섬기는 제우스와 그 졸개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현현하였다고 여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목격하였어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엉뚱하게도 거짓 신화에 등장하는 가짜 신들의 현현으로 착각하는..
그들의 주관적 정신상태가 놀라울 뿐입니다.
이와 같이 이목(耳目)과 오감을 통하여 들어오는 정보들은 진리가 아닌 것이 많습니다.
교회생활 중에서도 눈앞의 현상에 현혹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육신의 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적생활의 지침서로 성경전서를 주셨습니다.
기도하는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앙생활의 기준을 삼아서..
이상 또는 환상을 분별하여야 하고..
자기의 경험과 감정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대치하는 상태가 된다면..
어느 하나를 똥처럼 내다 버려야 하는데 ..
경험, 또는 내 감정을 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게 된다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신앙입니다.
그것은 자기 주관적 신앙이기 때문에..
그런 가르침이나 그런 선생들을 [이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 중에는 자기의 경험이나 가르침이나 감정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성경말씀을 왜곡시키는 짓도 서슴지 않습니다.
성경말씀을 해석함에 있어서도 자기의 생각대로 해석해서 가르치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성경 말씀의 일부를 삭제시켜버리기도 하고..
얼토당토않게도 진리의 말씀에 거짓 것을 뒤섞어 놓고..
마치 그것이 진짜인 것처럼 억지주장을 끈질기게 펼치는 자들도 있습니다.
여호와의 날 그날이 오면 모든 것이 만천하에 드러날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가 사람을 지으셨고 깊이 사랑하십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맏아들을 보내셔서 유월절 양처럼 십자가에 달리어 피를 흘리셨고..
그 피로써 우리의 모든 죄를 단번에 담당하셨습니다.
죄를 속하기 위해서 또 다른 속죄제는 필요치 않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다는 말은 죽을 죄인이 그와 연합하여 하나가 됨으로써..
그가 십자가에 달릴 때 나도 함께 달렸고..
그가 무덤에 묻혔을 때 나도 함께 묻혔으며..
그가 다시는 죽지 않는 몸으로 부활하실 그 때에 나도 함께 부활했다고 하는 그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물질세계관에 기인한 사람의 이론이 아닙니다.
이러한 믿음은 영적세계관에 의한 선언입니다.
하늘나라는 영적세계입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하나님이 사도요한의 입을 빌려 하신 말씀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하니라]고 하신 말씀입니다.(요6: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