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하나님!

예수님의 제자된 사람들..

순악질 의자왕 2022. 8. 2. 14:37

누가 아무리 예수님의 이름을 들어서 신기하고 놀라운 기적을 일으켰을지라도..

거기에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아니하였다면 그것은 사악한 짓일 뿐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음악을 창작하고..

감동을 자아내는 노래를 부를지라도..

거기에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아니하였다면..

그런 음악이나 노래를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가로 사용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감동적인 희생이 있었고 위대하다고 칭송을 받는 문학작품들을 썼어도..

거기에 하나님이 관여하시지 않았다면..

그것은 훌륭한 문학작품일수는 있어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작품들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포함시키거나..

신앙의 지침서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신구약 중간기라고 하는 그 기간 동안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시지 아니하였습니다.

1천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고 불순종하고 거역하고 배반하는 짓을..

저질러왔던 이스라엘 자손들에게서 하나님은 잠시 손을 떼셨던 것입니다.

참혹한 비극에 부르짖어 기도하여도 응답이 없고..

희망이 보이지 아니하였던 시절이 장장 400년이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에 유대인들은 수많은 문헌들을 양산하였습니다.

그 모든 문헌들을 하나님이 관여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착각하고 그것을 기준삼아서 하나님을 섬겨왔습니다.

그런 것들을 하나님이 과연 좋아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역사하심으로써 기적이 일어났다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온전히 받으셔야 마땅합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기적적인 일들은 막연한 가운데서 불쑥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그 사건에 하나님이 관여하시고 말씀하시고 일러주시고 지시하시고..

역사하심으로써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강력한 감동을 영감이라고 표현합니다.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전 초대교회의 역사서라고 할 수 있는 사도행전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롯한 교회지도자들에게..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신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 따르겠다면서..

지금도 직통계시를 주장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행태입니다.

초대교회 때는 바울선생의 서신서가 성경으로 자리 잡기 전이고..

베드로, 요한, 야고보, 유다 등 예수님의 제자들의 편지들 역시..

하나님의 성령으로 감동받아 기록된 편지들로 확정되기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교회생활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목적의 영적생활입니다.

사람의 창의적인 생각을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신앙생활을..

하나님께서는 인정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이롭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려는 사람들에 대하여..

민수기는 14장 39절에서 45절을 통하여 강력하게 경고하셨습니다.

성경의 모든 기록된 말씀은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의 올바른 교회생활을 위하여..

교훈과 반면교사를 제시하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에서 나타나는 기적적인 일들은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과..

목도한 사람들 모두 하나님께로 삶의 방향을 돌이키게 합니다.

중풍병으로 8년 동안 고생하던 애니아가 건강을 회복한 것을 보고..

룻다와 사론에 살던 사람들이 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삶의 방향을 전환하였음을 사도행전 9장 35절은 정확하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거나 목도하면서도..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때를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 된 생활을 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선행과 구제로 나타납니다.

다비다라고도 하고 도르가라고도 하는 여자가 선행과 구제로 살았는데..

그녀를 여제자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행9:36)

그런데 우리가 의문을 품을 수 있는 것은..

도르가가 제자로서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하는 삶을 살았는데..

어째서 그녀가 병들고 죽는 것입니까?

분명한 것은 그럴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또 예나 지금이나 혼자된 여인들은 고생하기 마련입니다.

울타리 역할을 하던 남편이 없어져버렸기 때문입니다.

다비다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던 과부들을 위하여..

속옷과 겉옷을 많이 지어 입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의 은혜를 입었던 과부들이 슬퍼하며 울었던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시체를 뉘어놓은 방에서 과부들을 모두 내보낸 후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 다비다야 일어나라고 말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막연하게 말한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기도 중에 어떤 강렬한 영감이나 확신, 혹은 성령이 친히 하시는 말씀을 따라..

[다비다야 일어나라]고 말하였을 것입니다.

이 일로 욥바 사람들이 알고 많이 주를 믿었고..

베드로는 욥바의 피혁제품을 다루는 시몬의 집에서 여러 날 기거하였던 것입니다.

피장 시몬은 아마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이었을 것이고..

주님의 종으로써의 사도 베드로를 지극정성으로 섬겼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교회생활, 신앙생활, 영적생활의..

연속적인 실생활로서 하나님의 눈에 지극히 아름다운 모습임을..

사도행전은 간단명료하면서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