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구하다.
2022년 6월 5일
세상정치에는 대략 세 종류가 있습니다. 신정정치입니다.
말 그대로 신이 통치하는 체제라는 소리입니다.
다음으로는 왕이 통치하는 군주국가입니다. 세 번째로는 공화정이 있습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민주주의를 최고의 선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민주주의를 선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독재를 경멸하다 못해 최고의 악으로 규정하고 저주를 퍼붓습니다.
다수결을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라]고 엄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독재자가 선하다면 최선입니다.
그러나 사람 중에 선한 자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속한 자들은 선하신 하나님의 독재를 환영합니다.
왕정을 둘러엎은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왕이 악해서 왕정을 둘러엎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 상하서는 이스라엘의 역사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녹아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왕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부분 왕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지 아니하고..
모든 생활에서 하나님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가짜 신을 섬기듯..
형식적이고 의식적이고 습관적인 종교행사를 하나님 앞에서 벌였습니다.(삼상8:8)
그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아니하고 주변나라들의 통치체제를 모방하여..
자기들도 왕을 세워 나라를 구색 맞추기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사무엘의 아들들인 사사 요엘과 아비야에게 있었습니다.
사사란 본래 구원자란 뜻입니다.
일상생활에서는 재판관 노릇을 하였고..
유사시에는 전쟁에 출전하는 야전군 사령관 노릇을 하는 것이 사사입니다.
그런데 요엘과 아비야는 평상시 재판정에 앉아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재판을 공정하게 해야 할 그들이 뇌물을 받고 엉망진창을 만들어버렸던 것입니다.
재판이 공정하지 못하면 억울한 사람들이 생겨나기 마련이고..
백성들의 불만이 쌓이게 되면 사회에 변고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종종 발생합니다.
교회공동체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야 마땅한 일인데도..
이상하게도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현상은 보이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랬던 것처럼..
왕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반역을 꾀하는 현상들이 종종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재판자리에 앉은 자들이 이익을 따라 공정하지 않은 판결을 내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두려운 것은 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게 하는 지도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통치하시는 곳이 교회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통치하시는 나라가 가정이어야 합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마다..
하나님을 절대적인 독재자 선하신 왕으로 알고 복종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는 날마다 좋은 일들이..
비온 후에 불쑥 불쑥 솟아오르는 대나무 밭의 죽순들처럼..
뜻하지 않게 수시로 발생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