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하나님!

장로노릇 돈 있어야 합니다.

순악질 의자왕 2008. 12. 22. 11:35

[교회에서 돈 없으면 장로 되기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믿음이 독실할지라도 장로 노릇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에 대하여..

해괴한 소리라며 게거품을 물고 비판하는 소리들이 그동안 많았습니다.

비판의 강도를 높이다 못해..

아예 안티 기독교인들이 더욱 생기고 안티싸이트들이 왕왕 생겨날 정도로..

이 문제는 교회 내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큰 소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뭘 좀 안다는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하여 냉소를 보냈고..

뭘 모르는 사람들은 뭐가 뭔지도 잘 모르면서..

덩달아 교회의 구린 듯한 부분들을 끄집어 내어 비난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필자도 뭘 모를 때는 그 소리가 상당히 공감이 가는 소리였고..

기독교회가 꼭 개혁해야할 부분이라고 여겼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든 장로나 권사 등..

항존직 직분 자를 세우기 위해서..

몇 백, 혹은 몇 천만 원의 헌금을 받는다고 한다면 그건 분명히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들이 교회에서 왜 발생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장로가 무엇이고 권사가 무엇이고 집사가 무엇이기에..

사람들은 장로 권사 집사가 못되어서 그리 안달이고..

또 목사들은..

장로 권사 집사들을 세우면서 뭐 하러 돈을 받고 그러는지 참 의아해했습니다.

장로 권사 집사가 되면 무슨 경제 적인 이익이 있어서 그럴까도 생각해 봤고..

장로 권사 집사가 되면..

교회에서의 위상도 높아지고 입김도 세어지기 때문인가도 생각해 봤습니다.

또 돈 받고 장로 권사 집사를 세웠다고 해서..

목사가 그 돈을 자기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목사들은 뭐하러 장로 권사 집사들을 세우려고..

그렇게 욕을 얻어먹으면서까지 그러는 것인지 참 이상했습니다.

또 교회헌법을 개정하면서 장로 권사 집사들의 시무정년을 70세로 정했습니다.

교회 직분 자들의 정년을 만들어 은퇴 또는 원로장로 제도를 두고..

현역에서 물러나도록 한 것도 이상하게 생각되었습니다.

목사라면 또 모를까..

장로 권사 집사들이 은퇴를 하면 교회에서 무슨 퇴직금이라도 줍니까?

대부분의 자립교회에서는 시무하는 목사들에게..

교회 재정에서 생활비와 그 외에 여러 가지 명목의 경제적인 지원을 해줍니다.

그러나 장로 권사 집사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직무는 순전히 헌신하고 봉사하는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죽기까지 헌신하고 충성하라고 말하면서..

왜 70세가 되면 은퇴를 하라고 그러는지 아둔한 필자로서는 아리송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직분 자들..

특히 교회에서 권위자들로 인식되는 장로들에 대하여 뭐라고 하시는지..

잠깐 살펴보았습니다.

초대교회는 현대교회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것이 큰 모험으로 느껴질 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였을 것입니다.

유대교도로 평생을 살아왔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기독교로 개종하기란..

말처럼 그리 수월한 일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일상생활의 중심이 유대교 회당에 있었기에..

유대교 지도자들로부터의 목숨의 위협과..

독특한 구조의 유대사회의 사회적인 편견과..

서민들이 대부분이었던 교인들은 경제활동적인 측면에서..

엄청난 장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저들의 교회생활은 그 자체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다름없었을 것입니다.

교인들 대부분이 가난한 사람들로 사회적 약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것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대하여..

성령께서 사건마다 수시로 기적을 일으키셔서..

저들의 가르침이 진실임을 입증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흉년이 왔습니다.

사회적으로 안정된 상황에서는 힘들지만 그런대로 견뎌낼 수 있었겠지만..

전체적으로 어려움이 닥치면 부자들의 습성은 손을 오그리는 것이기에..

가난한 성도들은 큰 위기에 놓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가난한 교인들은 부자들과 권력자들에 의해..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믿는 것을 포기하도록 강요받았을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굶주림에 내던져질 수밖에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형제란 어려울 때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잠17:17)

그러한 때에 예루살렘 교회에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름에 걸맞게도 그는 부자였습니다.

그의 별명은 바나바였는데 그것은 <권위자>라는 뜻입니다.

그가 굶주리는 형제들을 위하여..

얼마간의 재산을 정리하여 사도들의 발 앞에(교회에 헌금)두었습니다.

교회는 그 돈으로 많은 식량을 확보하였을 것이고..

교회내의 굶주린 형제자매들에게 배급하였을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요셉은 교회에서 존경받는 사람으로 입지가 굳어졌을 것이고..

그 누구도 그의 타당했을 말이나 견해에 대하여 반대가 없을 정도로..

교회에서 그의 높아진 위상을 그의 별명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나바의 권위가 스스로 높아지거나..

주변사람들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행4:32-37) 
 

아나니아와 삽비라 역시 초대교회의 교인이었고..

그들 역시 부자였습니다.

그들은 요셉바나바 처럼 순수한 의도로 헌금을 하지 않았습니다.

인위적으로 명예를 얻기 위한 쇼를 하였습니다.

혹 요셉바나바를 시기하였는지도 모릅니다.

곤란한 형제들을 위하여 연보를 하긴 했으나..

재물에 대한 욕심이 앞서서 일부를 감추고 전체를 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악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들은 본보기로 망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교인들이 있습니다.

또 그와 비슷한 목사들도 있습니다.

목사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요셉바나바와 같은 교인들을 길러내었더라면..

교회와 목사들이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일부 목사들이 자기들 스스로 자기꾀에 빠져서..

무수한 아나니아와 삽비라들을 길러내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합니다.

선교헌금명목으로 헌금을 하라고 해서 헌금을 거두었으면..

그대로 선교에 사용해야 합니다.

구제헌금명목으로 헌금을 수집했으면..

그대로 구제에 던져야합니다.

장로나 권사가 되기 위해서 거금을 내게 하거나..

그런 돈을 엉뚱한 용처에 사용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돈이 있건 없건 교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만한 지도자들을 장로로 세워야합니다.

개판치는 장로 권사 집사를 은혜라는 미명으로 장립하고 세우는 짓은..

이제 그만 그쳐야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같은 자들을 장로 권사 집사로 장립하고 세우는 짓은..

이제 그만 그쳐야합니다.

 

장로가 무엇입니까?

평화시에는 마을공동체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삼아 재판을 담당하던 사람들로서 존귀한 자들이었습니다. 

마을공동체가 위기에 놓이게 되면..

집에서 기르고 훈련시켰던 가병들로 군대를 조직하고..

친히 야전군 사령관이 되어 전쟁에 임하였고..

사재를 털어 군비(군수물자)를 조달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을 감히 누가 웃읍게 여기겠습니까!  

마을 그 누구도 그들을 멸시하거나 <똥덩어리>로 여기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이나라에는 정치인들이 그 어느 때 보다도 <똥덩어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정치인들을 닮은 사람들을 교회 장로로 세우고 있어서..

교회와 목사들이 한덩어리의 <똥덩어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과 사람들 눈앞에 기가 막히는 몰골로..

교회와 목사들이 비쳐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장로는..

교인들 대다수가 저절로 우러나는 존경을 표하는 자로 세워야합니다.

평상시에는 목사를 도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공동체의 질서를 세우고..

교회공동체가 위기에 빠졌을 때는..

목사를 도와 온 교우들로 더불어 한마음이 되어 하나님께 기도하고..

소유하고 있는 재산을 털어 교회를 위기에서 구출하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형제가운데 고통하는 자가 있을 때는 마음을 다하여 형제의 의무를 행해야 하고..

목사를 도와..

교회공동체가 부흥하고 든든히 서 가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절로 요셉바나바와 같이 존귀한 권위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짓도 안 하고 가만히 있기만 해도 은혜와 사랑이 그 얼굴에서 빛나는..

존귀한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항존 직분자들을 말씀으로 길러내는 목사들 또한..

저절로 존귀한 자들로 위상이 높아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