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마지막 때..
2024년 4월 14일 주일..
예수님이 오시기 전 유대인들은 잠시 동안 독립국의 지위를 누린 적이 있습니다.
대제사장 마따디아의 손자로써..
기원전에 잠시 동안 세력을 떨쳤던 유다 왕 힐카누스는 레위지파의 후손으로,..
여호와의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제단에 돼지피를 뿌리는 등..
성전을 더럽히던 시리아의 왕 안티오쿠스의 만행에..
떨쳐 일어나서 그들을 몰아내고 유다왕국을 세웠던 맛다디아의 손자입니다.
그 왕국은 100년 정도 명맥을 유지하다가..
내분이 일어나고 그 틈에 헤롯의 농간으로 슬그머니 로마에 의해 집어삼켜졌습니다.
헤롯은 힐카누스에 의해 유대교로 강제 개종하였던 에서의 후손으로 가짜유대이며..
로마의 꼭두각시 왕이었습니다.
이 교활한 헤롯의 통치를 받고 있을 그때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생각해 볼 때..
나귀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을 향한 유대인들의 격렬한 환영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이적과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한 현상은..
과거 하스몬 왕가의 그 어딘가 불안정하고 흉악하고 이상한 통치와는 전혀 다르고..
생소하다 할 만큼 신선하고 희망적이며 환상적인 광경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언제 왕위에 등극하시겠느냐’는 질문을 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어리석고 답답한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려고 오셨고..
그 피로 값을 치르고..
모든 사람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한 목적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이미 여러 번 이야기 했습니다.
첫째 백성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그 백성을 다스리고 통치할 왕이 있어야 하며..
셋째는 법률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나라와는 격이 다른 나라입니다.
강제로 통치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마음에서 왕에 대한 존경이 저절로 솟아나올 수밖에 없는 나라입니다.
누가 강제로 시켜서 법률을 지키는 것도 아니고..
지키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에 의해 두려움으로 법률을 따르는 것도 아닙니다.
왕의 통치가 어떠한 것인가를 목격하고 경험하고 깨닫고 즐기고 기뻐하며..
왕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나라입니다.
이 모든 완벽한 나라의 가치에 대해서 가르치고 인도하고 깨닫게 하는 이가 있는데..
그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오신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사람들을 위해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 직전에 반드시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첫 번째 결혼식을 마친 후에..
신랑 되신 그를 기다리는 정혼한 처녀의 심정으로 다시 오실 그를 기다려야 합니다.
재림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말들이 많으나..
그런 교묘하고 허무맹랑하고 엉터리 연설에 현혹되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입니다.
그날에 번개가 하늘 이편에서 저편까지 번쩍임같이..
순식간에 전 세계가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가 언제라는 말입니까?
언제인지 정확한 날짜는 특정하지 못하지만..
징조는 분명하게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징조의 특징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노아의 때에 있었던 상황과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면..
그날이 문 앞에 다다랐다는 징조라는 것입니다.
또 전 세계에 롯이 살았던 소돔과 같은 현상이 펼쳐지고 있다면..
그것이 주님의 재림의 결적적인 전조증상이라는 것입니다.
자 지금 어떻습니까?
온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습니다.
전에 없이 동성애가 온 세상을 휘젓고 있습니다.
옛날에도 동성애는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전에는 음지에 숨어 행하고 그늘에 가려지고..
어둠속에서 남모르게 즐기던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 온 세상 문명세계에서 그 괴악하고 부끄러운 일이 광포되고 있습니다.
골방에 숨어서 즐기던 동성애가 전파를 타고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고..
각 나라의 국회에서 그 문제를 공론화하고 합법화시키려..
거대한 힘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우리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 현상이 있습니다.
개와 고양이 등 애완용 동물들이 사람보다 더 대우를 받는 현상입니다.
전통적으로 개들은 사람이 사는 문밖에서 집을 지키는 짐승들이었습니다.
이것들이 사람이 살고 있는 안방에까지 침투하여 침실을 차지하고..
심한 경우 사람과 그것들 간에 성적인 관계로까지 발전하고 있습니다.
반려자라는 이 황송한 단어를 개들이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목격하면서 경악하지 않고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고 있다면..
이미 그 썩은 물에 젖어들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때입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 앞에서 그가 지향하시는 가치를 생활 속에 구현하는 사람들이..
참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어느 줄에 서야 하겠습니까?
시대의 흐름에 따라 물 흐르듯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라고 정몽주를 회유하던 이방원의 시조처럼..
예수의 사람들이 세상에 파묻혀 그리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 아버지가 좋아하시겠습니까?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말기적 현상들을 바라보면서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이러한 시점에 주와 복음을 위하여 뜨거운 열정으로 일하는 것이..
11시에 와서 일하는 종들이 할 일입니다.
짧은 기간 열정으로 일하고 그날에 칭찬과 함께 상급 받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