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하나님!

진실한 위로자..

순악질 의자왕 2020. 4. 25. 19:17

세상에는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30-40년 전과 비교하면 국가적으로는 경제규모도 커졌고 풍요로워진 것 같은데..

상대적 빈곤감을 크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상살이가 각박하고 살벌하여서 그런지..

사람마다 대수롭지 않은 말에도 마음에 크게 상처받아서 고통스러워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술과 마약으로 고통을 잊으려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하여 음란물이나 게임으로 괴로움을 잊으려 하고..

어떤 사람들은 도박으로 캄캄한 터널을 한방에 벗어나려는 유혹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교회가 절망의 늪에 빠진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탈출구가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가 그런 사람들에게 위로 자가 되기는 커녕..

오히려 절망하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안티기독교라는 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서..

교회와 목사들을 곤혹스럽게 합니다.

기독교를 개독교라 하고 목사를 먹사라 하며..

악의적으로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평소에 교회가 제살 깎는 것처럼, 물량주의를 배격하고..

고통 중에 있는 이웃들을 돌아보는 모습을 보였어도 그러겠습니까?

교회가 세속에 물들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도 생각했습니다.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가치관이 세상과 다른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상과 교회가 가치관이 똑같다면 맛을 잃은 소금일 뿐입니다.

 

마음에 크게 상처받은 사람들이 돈이면 위로가 되겠습니까?

잠시 동안 고통을 잊을 수는 있겠지만 진정한 위로가 되지는 못합니다.

여자가 아기를 낳을 때는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며 고통스러워한답니다.

그러나 출산 후에 젖을 물리고 아기가 자라면서 다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임신과 출산과 수유의 전 과정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그 일에 개입하셔야 사람은 진정한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계명으로 받아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계율을 어겨 징계를 받는 모습은 참혹합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이라도 그들을 위로하지 못할 정도로..

그들은 처절하게 파멸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의 위로자로 나타나셨을 때..

그들은 과거의 참혹한 모습을 전혀 발견할 수 없을 만큼 영광스럽게 빛났습니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위로자임을 나타내시려고..

하나님이 그들의 역사에 경륜을 펼치셨습니다.

그들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위로자로 나타나시려고 준비를 다 마치시고..

그 종들을 통하여 선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40:1-2)

 

세상살이가 왜 이렇게 사납고 위태롭고 요동을 치는 것입니까?

왜 도처에 불행이 널리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피하면 위로받게 되는 것을 알게 하려고 그런 것입니다.

세상의 위로는 한계가 쉽게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로는 영원합니다.

세상 것의 위로는 조금 지나면 허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는 아름답고 벅찬 감동의 여운은 끝이 없습니다.

그 위로를 얻기 위해서는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성경은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고..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사40:3-4)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육신으로 하는 모든 노력은 허무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하시는 위로의 말씀은 영원합니다.(사40:6-8)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모든 이론은 잠잠해야 합니다.(합2:20)

교회에서는 자기 생각과 의견이 말씀을 넘어서면 안 됩니다.

아무리 자기 의견이 출중하고 기발하게 여겨질지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상충되면 입을 닫고 잠잠해야합니다.(고후10:4-5)

내 생각을 조용히 내려놓고..

그의 말씀 앞에 엎드려 귀를 기울이고 경청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가 나에게 임하실 때에..

항상 강한 군주를 앞에 서 있는, 무장해제를 당한 군인이 되어야 합니다.

항복하면 망하지 않습니다.

젖먹이는 암컷 양들을 온순히 모는 목동처럼..

그가 우리 앞에 다가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0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