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하나님!

타협하라고 고함질러댑니다.

순악질 의자왕 2005. 11. 10. 08:24
 

대표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사오나]..

이런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사람이 엉뚱한 짓을 저질러서 죽게 되니까 오랜 세월에 걸쳐 살릴 계획을 세우시고..

마침내 자신이 이 땅에 오셔서 대속물이 되어 형벌과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죄로 인해 초라해진 사람을 측은히 여기셔서 저주의 결박을 풀어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으니까 억지로 [믿습니다]를 외치는 것입니다.

안 믿어지니까 여전히 저주를 안고 사는 것입니다.

듣고 믿어져서 믿고 있는 사람은 [믿습니다]를 외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냥 행동에 옮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신 약속이 믿어지면 하나님의 영광이 눈앞에 나타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實像)이라고 안합니까!

그분의 약속을 믿는 그 믿음은 허상(虛像)이 될수가 없는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어떤 좋은 것들을 거저 주셨는지 알게 하시려고..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죄와 상관없이 그분의 은총을 바라며 그분께 나아가면 좋은 것들을 받습니다.

 

때가 되면 왕 노릇하게 하시려고..

육신의 때를 사는 동안 혹독한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앞선 문명의 사람들이 미개한 족속의 땅에 가서 그들을 지도하고..

그 지혜로 그들의 삶에 유익을 가져다주면서 왕 노릇하였던 것처럼..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도..

왕 노릇하게 될 때가 있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대상으로 왕 노릇하게 되는지는 모릅니다.

복을 나누어주고 삶을 윤택케 하는 생수가 그 배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몸속에 생수가 들어가면 저절로 좋은 일이 됩니다.

왕 노릇입니다.

그 때가 언제입니까?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믿고 죽었던 자들이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하는 날입니다.

죽음을 맛보지 못한 자들은 몸이 홀연히 변화되는 날입니다.

어떤 몸으로 변화됩니까?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몸입니다.

그때를 위하여 지금은 환란을 통과하면서 훈련받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통치자들은 찍어 누르며 군림하고 있으나..

저 나라의 통치자들은 섬기며 다스리는 통치자들입니다. 

 

지식은 사람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사고(思考)의 존재로 다듬어져 가도록 이끕니다.

지식과 자기훈련은 잘 다듬어진 인격을 형성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이 최고의 가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때때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행하는 데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 쌓은 지식이 그분의 약속을 헛것으로 여겨지도록 핑계거리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사역자들에게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시지만..

우리의 쌓은 지식은 [타협점을 찾으라]고 강력하게 권고합니다.

하나님은 [어린아이 처럼 순수하고 단순하게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라]고 하시지만..

우리의 쌓은 지식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라]고 고함을 질러댑니다.

잔치 집에 고민거리가 생겼습니다.

술이 고갈되어 버린 것입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께 형편을 고합니다.

그리고 하인들에게 권면합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뜰에 돌 항아리 여섯 개가 놓여있는 것을 보시고 예수께서 하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아구까지 물을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물로 된 포도주 사건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사나..

물위를 걸으신 것이나..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치며..

귀신을 쫓아냈던 일들 모두 이치에 맞지 않고 합리적이지도 못합니다.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해서 진리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나의 알량한 지식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좋은 것들을 막아버리는 눈꺼풀이 될 수도 있다는 소리입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라고 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 무엇인가를 약간 파악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사람이 무엇인가를 파악만 했을 뿐 해답은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사람에 대해서 정확히 정의를 내렸을 뿐 아니라..

사람이 취해야할 자세까지 명확하게 제시했습니다.

사람은 본래 탁월한 능력과 뛰어난 지혜와..

통치자의 위광(威光)이 초등(超等)하였던 존재로 창조되었었으나..

원수마귀의 흉계에 의해 그 모든 좋은 것들과 통치자의 권세도 모두 빼앗겨 버리고..

초라하게도 만물의 찌꺼기 같은 처지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사람의 완전한 자세는 뻣뻣하게 머리를 처든 자세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무릎을 꿇고 두 손바닥을 땅에 붙이고 머리를 조아린 모습입니다.

그분 앞에서는 자존심을 헌신짝 버리듯 해야 합니다.

집나갔다 초라한 꼴로 아버지 집을 찾아온..

면목 없는 둘째아들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참 아버지 되신 그분은..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내쫓는 엄한 분이 아닙니다.

[좋은 신을 발에 신기고 좋은 옷을 내다 입혀라]..

[송아지를 잡으라 먹고 마시며 즐기자 잃었던 아들을 되찾았다] 하시며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밥먹고 죄만 지었는데도..

좋으신 그 아버지는 죽었다가 살아온 아들처럼 우리를 대우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들은 범죄할 때마다 저주와 형벌을 면치 못하였으나..

우리는 예수가 대신 받은 형벌 때문에..

같은 죄를 범하고서도 형벌은 커녕..

생명과 복을 날마다 넘치도록 받아 누립니다.

그분은 우리 속에서 예수의 피를 발견하시고..

우리 죄를 모두 잊어버리신 것입니다.

누가 자기의 어린자식의 침이 더럽다고 뽀뽀를 멈추겠습니까!

어떤엄마는 아기의 똥을 맛도 보았다던데.....

그저 사랑스러운 존재이기에..

더러운 것도 못 보시고..

못난 것도 못 보시는 분입니다.

사랑에 눈먼 그분!

그분은 어떻게 하라고 타협입니까!

그분은 어떻게 하라고 우리가 그 알량한 지식과 타협하겠습니까!

그분의 피로 양심을 회복했으면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타협할 생각을 먹고 있다면 당신은 아직도 양심이 회복되지 않은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