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하나님!

통증은 왜 오는가...

순악질 의자왕 2016. 9. 10. 12:00

얼마 전에 사랑하던 교인이 소천하여 장례예배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영안실에서 유족들과 교인들이 함께 입관예식을 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두 사람이 들이닥쳐 영정에 대고 절을 해댔습니다.

상주들이 깜짝 놀라서 예배드리다 말고 벌떡 일어나 서서 문상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황당하고 무안하여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결혼식만 예식이 아니고 장례식도 예식이 분명한데..

이런 무례와 모욕을 안기는 사람들은 보다 처음이었습니다.

장례식을 집례하는 목사가 저들의 눈에는 우습고 가소롭게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목사가 아무리 허접하게 보였어도 그런 무례를 범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 자리에 함께한 유족들과 교인들에게도 모욕을 주는 행위이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함께 모욕을 당하셨으므로..

하나님이 그 일에 대하여 책망하시리라 믿고 잠자코 있었습니다.

가족을 먼저 떠나보낸 사람들이 받는 통증은 큽니다.

또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하다가 당하는 모욕도 통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통증 후에는 하나님의 깊은 위로가 있고 좋은 일의 단초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육신의 시기는 때때로 통증이 복이 될 수 있습니다.

통증을 통하여 건강에 관한 문제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몸에 어떤 이상이 오면 건강한 사람은 반드시 통증을 느끼게 됩니다.

몸에 이상이 왔는데도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옛날에는 문둥병에 걸린 사람들이..

손가락이 없어지고 코가 문드러지고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었습니다.

생활 속에서 찢기고 긁히고 상처가 생기는데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크고 작은 상처를 방치해서 병을 키운 결과입니다.

문둥병 병균이 코를 갉아먹고 손가락 발가락을 갉아먹어서 그리 된 게 아닙니다.

신경이 죽어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살이 썩고 고름이 줄줄 흘러도 통증을 느끼지 못해서 생긴 사단입니다.

당뇨를 앓고 있는 분들도 상처가 생기면 통증을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병을 키우는 일이 흔합니다.

머리 아프면 원인을 찾아내어 치료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두통이 생기면 뇌신을 먹었습니다.

원인을 찾기 보다는 임시방편으로 통증을 멎게 하는 뇌신을 애용했던 것입니다.

 

사람은 육체뿐 아니라 영혼도 통증을 느낍니다.

영혼에 통증이 느껴지면 사람은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영혼이 병들고 영혼이 곤고해지면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지고..

사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믿음 없는 사람들은 자살을 생각하게 되고..

순식간에 영혼의 장막인 육신이 무너지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문제가 발견되면 즉시 하나님의 말씀을 찾습니다.

말씀 속에 해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영혼과 육신에 통증을 느끼며 사는 것이 복입니다.

누구든 마음이 곤고해지고 황폐해져 가는 것을 느끼면..

영혼에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빨리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성경을 읽어야 하고 거기에서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성경읽을 겨를조차 없다면 빨리 성경의 전문가를 찾아 조언을 구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 있는 사람일수록 예배를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몸에 이상이 왔을 때도..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한 진단을 내려야 쉽게 고칠 수 있듯이..

영적인 문제도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내야 해결책을 내놓게 됩니다.


사람마다 사업을 하거나 무엇을 경영하거나 어떤 일을 추진하기에 앞서..

반드시 사업성패의 환경을 예측하고 전망을 가늠해본 후에야..

비로소 사업진행 방향을 설정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일을 벌여놓기는 했는데 앞이 캄캄한 듯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판단력의 오판으로 일이 틀어지고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이 악화되었을 때..

사람들은 좌절하고 낙심하여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를 경우가 있습니다.

사망의 그늘에 앉은 것과 같습니다.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게 곤고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쇠사슬에 매인 것과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는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은 원망부터 쏟아냅니다.

그러나 믿음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기도합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은 주변 환경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고 발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말씀을 통하여 문제를 발견하라고 말씀하십니다.(시107:11)

하나님을 신뢰하고 말씀을 맡은 자들을 신뢰하면..

꼭 길이 보이게 하시고 좋은 일이 생기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찬송을 받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에게는 잘못했을 경우에 반드시 징계가 뒤따릅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히5-13)

그 징계는 그 경영하는 것이 망하도록 무거운 징계가 아닙니다.

약간의 통증을 느끼게 하셔서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시는 징계입니다.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하시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고전10:13)

사람이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마땅히 도움을 줄것 같은 주변 사람들이 팔짱만 끼고 구경하고 있다면..

저들을 대하여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께 호소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밝은 곳으로 인도하여 내시고..

그 모든 얽히고 설킨 문제의 줄들을 풀어주시고 끊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얽혀있던 모든 문제들이 술술 풀어지고..

묶였던 모든 문제들이 저절로 끊어지고, 대로가 열려 형통하게 됩니다.

그 후에야 사람들의 입에서 하나님을 노래하는 소리가 흘러나오게 되고..

그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예수쟁이가 되는 것입니다.(벧전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