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만이 고치실 병입니다.
피부와 말초신경에 문제를 일으키는 병으로서..
눈, 고환, 코, 인두점막에 침범하여 말초신경을 파괴, 감각을 잃게 하고..
차츰 조직을 일그러지게 하는 나병에는..
크게 2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나종라(癩腫癩) 또는 피부라(皮膚癩)와 결핵양라(結核樣癩)가 그것입니다.
전자는 작은 만성염증성 결절을 만든다고 하고..
후자는 초기에 가장자리가 붉고 약간 불거진 반점이 나타나다가..
나중에는 이 반점들이 커지고 감각도 없어지는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비교적 증세가 덜하다고 보는 것이 결핵양라인데..
병의 진행속도가 느리거나 증세가 좋아지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저절로 낫기도 한다고 합니다.
현재 쓰이는 치료 법은 2종류로서..
술파제를 장기간 복용하도록 처방한다고 하며..
강력한 효과로 복용즉시 감염이 그치고 병이 호전되나..
심한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고..
때로는 증상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계속 약물치료를 해도..
증상이 개선되지 않아서 절망적인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나병은..
현대의학으로도 완치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고 된 환자 수는 적어도 200만 명이나..
실제 감염된 사람의 수효는 1,1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며..
감염경로도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고 합니다.
다만 감염된 사람과 오랫동안 가까이 신체적으로 접촉하면..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은 대개 감염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천성인지 후천성인지도 아직 명확히 알려져 있지도 않고..
소독이 제대로 안된 주사바늘이나 문신을 새길 때도..
전염될 수 있다는 정도뿐입니다.
치료와 예방이라는 것이 고작..
박테리아 검사에서 양성으로 나온 환자들을 격리시키고..
약물에 의한 치료뿐임을 생각할 때..
현재도 이 병을 천형(天刑)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도 문둥병을 죄에 대한 형벌로 자주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단 문둥병에 걸리면 그 사람의 인생은 종쳤다고 여겼습니다.
가족들과 강제로 격리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회생활은 정지되고..
오직 격리 수용되어 희망을 잃어버린 채..
꿈이 없는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문둥병에 걸린 사람은 사는 것이 지옥일 수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동네마다 문둥병으로 처참한 몰골의 사람들이..
종종 어슬렁거리며 얻어먹으러 다녔었습니다.
그 보는 것만으로도 무서워서도 먹을 것을 얼른 내주고 보냈습니다.
흉측한 소문도 무성했습니다.
어떤 젊은 댁이 젖먹이 아기를 등에 업고..
외진 산 고개를 넘어 친정엘 다녀오는데..
갑자기 문둥이가 나타난 것입니다.
기겁을 하고 소리치며 달아나려했으나..
오금이 저려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고..
이내 붙잡히고 말았다고 합니다.
문둥이가 하는 말이..
[나는 문둥이요!]..
[등에 업은 아기를 내놓으시오!]..
[삶아 먹어야 문둥병이 낫는다니 어쩔 수 없소!]그랬더랍니다.
젊은 댁은 통곡하며..
[아기를 살려주시면 뭐든 다 하겠다]고 했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문둥이가 말하기를..
[그럼 아기를 옆에 재우고 나하고 몸을 한번 섞으면 살려주겠소!]..
그랬더랍니다.
성욕을 채운 문둥이가 사라지자 절망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 젊은 댁은..
고민 끝에 남편에게 사실을 털어놓으며 울었답니다.
남편이 말하기를..
[그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요!]..
그리고 곧바로 군산의 큰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질을 세척하고 소독한 후에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끔찍하고도 슬픈 스토리는 어제의 일처럼..
내 귀에 쟁쟁거리는 것만 같습니다.
문둥병은 사람을 처참하게 합니다.
문둥병으로 희망 없는 사람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예수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는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수 있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문둥이를 만지면 부정 탄다고 생각했으나..
예수님은 민망해 하시면서..
손을 내 밀어 그에게 손을 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니 깨끗함을 받아라!]..
기실 예수님은 병 고치려는 목적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많은 고난을 받고..
흉측한 몰골로 처참하게 죽으러 오셨습니다.
당신의 죽을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문둥이가 너무나 측은하여 견딜 수 없었기에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처럼 육신을 입고..
사람이 받아야할 저주를 대신 받고 죽으러 오신분입니다.
우리의 근본적 문제를 일시에 해결하시러 우리에게 오신 분입니다.
문둥이가 그러하듯이..
우리 스스로는..
우리의 죄로 인해 처한 처참함을 개선시킬 도리가 없습니다.
다만 그분의 불쌍히 여기심만 바라보아야 할 처지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로 인해..
문둥이처럼 끔찍한 몰골일지라도..
그분은 기꺼이 받아 품에 안아 쓰다듬으며 고쳐주시고..
깨끗하게 하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분의 품으로 파고드는 사람을..
그분은 더럽다고 내치거나 피하여 떠나시는 분이 아닙니다.
깨끗함을 입은 문둥이가 입의 말로 구원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의 평소의 입술의 열매가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그분을 향한 뜨거운 소원을 품은채..
과감히 나타나서 용감하게 말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문둥병 환자와 같은 자들이 더러 있습니다.
신경이 죽어 감각이 없는 자들입니다.
예리한 검으로 찌르거나 베어도 피고름만 나올뿐..
눈만 멀뚱멀뚱한 채 헛발질을 해댑니다.
[너는 짖어라 나는 달리 해석한다]그러는것 같습니다.
그들은 종교인과 같습니다.
콘크리트보다 더 단단한 자기만의 아성을 구축하고..
목사의 권면은 조용히 묵살합니다.
이미 마음속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 사적인 계획을 다 세워놓고..
말씀의 권면을 받는체 합니다.
말은 없어도 그 행위로 불순종과 거역과 훼방을 나타냅니다.
나는 그들에게 감정을 갖고 대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하나님이 그 못된 버릇에 손대시고 고치시기를 기다릴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