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된 소수가 큰일을 낸다.
2023년 4월 23일
요셉에게는 장자 므낫세와 차자 에브라임이 있습니다.
야곱이 이들을 축복할 때에..
오른 손을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장자 므낫세의 머리에 얹었습니다.
이 모습을 이상히 여긴 요셉이 아버지 야곱에게 순서가 틀렸다고 말씀드렸지만..
야곱의 어긋맞긴 손은 달라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이것은 장차 차자인 에브라임이 크게 될 것을 암시하였던 것입니다.
야곱이 두 손자를 자기 아들의 항렬에 올려놓아서..
그들이 후에 삼촌들과 함께 열두 지파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들은 인구도 많고 따라서 분깃된 토지도 많이 차지하였습니다.
그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살던 동네인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지파의 ‘엘가나’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엘가나라는 이름은 ‘소유권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그에게는 아내가 두 명이었습니다.
첫째부인이 ‘한나’요 둘째부인은 ‘부닌나’입니다.
한나는 남편의 사랑이 깊었으나..
‘브닌나’에게는 남편의 사랑이 옅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남편의 사랑이 깊었던 한나에게는 자녀가 없었으나..
이상하게도 브닌나에게서는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한나를 향한..
브닌나의 질투심과 시기가 폭발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 정도가 너무나 심하여 한나의 고통은 극에 달하였는데, 그 괴로움으로 인하여..
한나는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찢는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때에 ‘실로’라는 마을에 성막이 있었고..
제사장 엘리와 그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도 역시 제사장이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안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다(Yada)라는 말인데..
그것은 ‘남녀가 결혼하여 동침하였다’는 뜻입니다.
남녀가 결혼하여 각자 상대방을 경험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수행하는 사명자들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반드시 경험하여야만 하는 것인데..
홉니와 비느하스는 그러한 자세가 전혀 갖추어지지 아니하였다는 소리입니다.
이러한 때에 엘가나의 집안에서 고통스러운 일이 생겼고..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 외에는 해결 할 길이 없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한나는 제사장 엘리의 말씀 몇 마디에 큰 힘을 얻고..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는 얼굴에 수색이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 대목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나서도..
여전히 근심과 걱정이 생활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약속을 전혀 믿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장 엘리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왔어도..
브닌나의 괴롭힘은 줄어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로 인한 한나의 고통은 아마 전보다 더욱 극심했을지도 모릅니다.
응답의 말씀을 받았으면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인내로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의 삶에는 고난이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한나의 고난은 그냥 의미 없는 고난으로 끝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 고난이 왜 나에게 왔을까를 깊이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심각히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해서 그것을 즐기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깊고도 오묘한 뜻을 이루시려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십 년 동안 교회를 출입하면서도 한사람도 전도를 하지 못하였다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모습임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자식이 없는 한나의 심정을 느끼지 못한가도 한다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수많은 증인들 앞에서 수치와 모욕을 당해도..
유구무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남자요 교회는 여자로 표현하였습니다.
믿었으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고 그의 자식들을 낳아야 정상입니다.
남편 되시는 그리스도를 닮은 자녀들을 낳아 그의 자녀로 길러내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세상의 온갖 것들을 소유하고 움켜쥐려는 목적을 가진 것처럼 부르짖는 기도는..
그리스도 앞에 부도덕하고 더럽고 추악한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기도의 제목을 확 바꾸어야 합니다.
오늘날도 한나와 같은 믿음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교회를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다수의 수치스러운 교인들 틈에 섞여있지 않는 게 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