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부활절..
부활절 토끼와 달걀은 기독교와 상관없는 캐릭터입니다.
천주교가 이방종교의 제의를 차용해서..
마치 자기의 전통인 것처럼 슬쩍 둔갑시켜 오랜 세월 지키던 것인데..
이 잡것은 어쩌면 북이스라엘 초대 왕 여로보암이 하던 짓과 흡사합니다.
부활절 달걀 토끼는 고대 가나안의 여신 아스다롯을 상징합니다.
바벨론의 이슈타르, 이집트의 이시스, 앵글로색슨의 이스터, 튜턴족의 에우스토레..
독일의 오스테론, 그리스의 아프로디테, 로마의 비너스와 같은 종류의 잡것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여신을 난잡하게 섬기고 즐기던 축제가 좋아보였던지..
천주교가 이 역겨운 축제들을 슬그머니 교회로 끌어들여 교회 절기로 만들어버리고..
이 잡것이 수천 년 동안 전통이라는 미명아래..
교회 안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하여 왔던 것입니다.
천주교가 큰집이고 자기네는 작은 집이라고 공공연하게 떠버리는..
대형교회의 일부 목사들을 따라하는 따라쟁이들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심정이 어떠하실지 우리는 깊이 생각하여야 합니다.
저들을 우리 주님이 좋아하시겠습니까?
어떤 젊은이가 말을 사랑하였는데..
열이 나고 아픈 말에게 물을 마시우면서 지극정성으로 돌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말은 회복이 되지 않고..
점점 심해져서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답니다.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은 어떤 어른이 그 모든 사실을 듣고..
[사랑은 일방적인 자기 방식대로 하면 치명상을 입히게 된다]고 말하였답니다.
열이 나는 말에게 물을 마시게 하는 것이 말을 죽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교회생활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우리는 교회생활의 목적을 분명히 세워놓고 행하여야 합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으며, 성경을 교회생활의 지침서로 믿고..
절대적인 가치와 절대적인 기준으로 정해놓고 행하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 아닙니까?
성경말씀을 잘못 해석하여 오해를 하고..
본래의 하나님의 뜻을 제멋대로 왜곡시켜서 이상한 방법으로 섬기게 하고..
그렇게 잘못 가르치는 자들을 가리켜 이단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벗어나서 자기의 생각을 따라 교묘한 방법을 고안해서..
교회생활을 하는 집단들을 가리켜 이단 또는 사이비라고 합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개혁교회의 부르짖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내 사랑의 방법이 성경에 비추어볼 때..
잘못되어져 있다고 발견되었다면 즉시 수정해야 하는 것이 개혁교회의 자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고난을 당하셨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으셨습니다.
무덤에 장사한 후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또다시 죽는 그런 저급한 몸으로 살아나신 것이 아닙니다.
다시는 죽지 않는 몸으로 살아나셨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몸으로 다시 살아나셨고..
모습도 자유자재로 변형되실 뿐 아니라..
사람들 눈에 보였다 사라졌다 하는, 그런 신기한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 몸을 ‘부활체’라고도 하고 ‘신령한 몸’이라고도 합니다.
그분은 믿는 자들의 첫 열매로 부활하셨습니다.
그의 행적을 자세히 살펴보면 믿는 우리의 장차 될 일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사람에게 주시지 아니하면..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기도 많이 하는 사람도 하나님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열심히 성경을 읽거나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대화하신 장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제자들의 질문들이 한결같이 물질세계관에 갇혀있음을 보게 됩니다.
제자들은 물질세계관으로 보는 관점에서 질문을 하고..
예수님은 영적세계관에서 대답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성령이 사람들에게 내려오시고 부터는..
제자들의 생각과 말이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께서 로마의 지배아래에서 신음하는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비참한 몰골로 죽게 되고 제자들은 모두 흩어지고 도망쳐버렸습니다.
그리고 각자 생업을 찾아 옛날의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물고기 잡는 일이 헛된 노력이 되어 빈 그물만 올라왔습니다.
그러한 때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께서는 그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기도 하였습니다.
또 열둘에 포함되지 않은 제자들이 있었는데, 허탈하고 기가 막힌 제자들..
즉 글로바와 또 다른 제자가 엠마오로 내려가면서..
서로 하소연과 탄식으로 상심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는데..
그때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들 곁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들 역시 물질세계관의 관점에서, 모습을 바꾼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10km의 거리를 그들과 함께 걸으시면서..
예수님은 영적세계관으로 성경을 풀어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이 아니고는..
영적세계관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고 판단할 안목이 사람에게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날 주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을..
인내로 기다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