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교회에 갔더니..
[인생은 어느 한 날을 위해 사는 것이다]라는 문구를..
예배당 벽에 크게 써 붙여 놓고 있었습니다.
참 공감이 가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역사가 종말을 고하는 그날, 우리 육신의 때가 마감되는 그날..
그 날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발견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마25:13)
나는 현재 무엇 때문에 사는 것입니까?
인생의 목표를 어디에 두고 살고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순간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는 것입니까?
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어떤 목사님이 노무현 씨를 뒤따라 목을 매 자살을 했습니다.
이명박 씨의 타도를 목적으로 자살했습니다.
짧고 간명한 유서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90이 다 된 노인이..
더구나 목사로 불렸던 이가 자살을 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시사하는 것입니까?
유족들이나 이념의 성취를 삶의 목표로 삼고 있는 분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목사로서 하지 말아야할 행동을 극단적으로 벌인 짓이기에..
칭찬하거나 미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자살은 어떤 논리로도 합리화시키지 말아야합니다.
예수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힘으로 산다는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율법을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그러나 계명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이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사랑을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그러나 역시 계명대로 살 능력이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의 핏줄을 타고 성령이 내려오시게 했습니다.
사람은 성령하나님이 힘주시고 감동하셔야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이웃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평생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에 따라 산다고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24시간 내내 성령의 감동을 받으며 살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순간순간 자기생각에 붙들려 살고..
순간순간 육신이 왕 노릇하는 현장에서 갈등하며 무너지고 넘어집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인솔할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도 역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두려워 떨었을 것입니다.
순간순간 무너지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버림당하지나 않을까 염려하였을 것이고..
자기의 형편없는 몰골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떠나시지는 않을까 걱정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이 안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사명이 마치기까지 내가 너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자비로운 그분이 약속하셨습니다.(수1:5-9)
인생은 아홉 달의 태아의 때와..
그 백배에 가까운 세월의 육신의 때를 거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영혼의 때를 맞이하게 됩니다.
태아의 때를 잘 거쳐야 건강하고 행복한 육신의 때를 맞이할 수 있고..
육신의 때를 잘 거쳐야 행복한 영혼의 때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팔다리가 각각 네 개씩인 기형의 여아가 생겨났습니다.
인도사람들은 그 아이를 신의 현현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태아의 때에 뭔가 잘못되어서 생긴 기형입니다.
태아의 때에 뭔가 문제가 생겨서..
아름다운 육신의 때를 맞이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육신의 때는 장래 영혼의 때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차대한 순간일수 있습니다.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사느냐에 따라..
그날에 영광, 또는 수치가 현실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때는 고난의 바다와 같습니다.
계시록의 사도 요한은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나타나서..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를 노래하는 장면을 보면서 어떤 분과 대화합니다.
그들이 누구며 어디에서 왔는가 하였더니..
[이는 큰 환란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계7:9-14)
육신의 때는 고난의 파도가 끊임없이 몰아닥치는 환란의 때입니다.
그 모진 환란가운데서도 믿음을 버리지 아니하고..
굳게 붙들고 살아나온 자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아무것도 일한 것이 없어도..
고난 가운데서 믿음을 놓쳐버리지 아니하고 견딘..
그 한가지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사람보기에는 구질구질하게 살았을지도 모르지만..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의지하면서 살아온 세월이기에..
하나님의 눈에는 세상 그 어느것 보다도 귀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육신의 때를 살면서 놓치지 않아야 할 한 가지는..
하나님과 주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 사랑의 행위들이(교회생활이) 결코 구원받는 조건이 될 수는 없습니다.
(구원은 사람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의 환란 중의 그 몸부림은 하나님의 코에 향기입니다.
사랑에 미치면 못할 짓이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남들의 눈에는 광적이고..
정신없는 짓이고..
어딘가 비이성적인 모습으로 비쳐질 수도 있겠으나..
하나님의 눈에는 황홀한 모습입니다.
하나님도 가치 없고 낮은 나를 사랑하셔서..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셨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알게 하고..
가치 있고 격조 높은 천상의 삶을 연습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예수이름으로 모여서 그분께 찬송하고 예물을 드리고 기도하고..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면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소홀히 하는 것이 교만이고..
이것을 하찮게 생각하는 것이 거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영혼의 때를 염두에 두고..
거기에 목표를 두고 살면서..
예배를 삶의 가장 우선순위에 올려놓는 것이..
믿음생활이고 신앙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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