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하나님!

자식낳아 안겨드려야 효자입니다.

순악질 의자왕 2009. 11. 21. 17:25

믿는 사람들은 복음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복음은 하늘나라에서 이미 창세전에 먼저 있었습니다.

천지창조가 있기 전에 천국에서 있었던 하나님의 큰일..

즉 사람에게는 좋은 일의 그림자로서..

천지창조와 에덴동산의 창설이 있었던 것입니다.

에덴동산은 하늘나라의 모형이라는 소리입니다.

창세기를 읽으면서 하나님께 있는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믿는 자들에게는 중요한 일입니다.

아담이 아버지가 되고 그 후손들이 아버지가 되어서..

자식들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모습을 보면서..

하늘나라에서 말씀으로 나를 낳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하신 좋은 약속의 말씀을..

내가 지금 듣는 순간 ..

복음은 2천 년 전의 십자가 사건이 아니고 현재 내 눈앞의 사건입니다.

복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미 다 이루어놓으신 것들을 상속자의 신분으로 맘껏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들의 손을 빌어 전해진 율법은..

그것을 받는 자들이 몸부림치면서 지켜 행하여야 하는 것들입니다.

사람은 능력이 한계가 있기에 거룩한 율법을 지켜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럼 사랑의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사람이 지켜 행하지도 못할 율법을 선포하셨더란 말입니까?

결국은 크고 깊은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을 나타내 보이려고 그런 것입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다 하십니다.

율법은 얽어매고 가두고 심판하는 법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로 오셔서 십자가에 자기를 던져 깨뜨리시고..

그 법에서 우리로 하여금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전도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에게 있는 생명의 씨앗을 다른 사람에게 심어서..

그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게 하고..

그를 아버지의 품에 고이 안겨드리는 일입니다.

믿는 자들은 어떻든 영원히 꺼지지 않는 영생의 씨앗을 다른 사람들에게 심어서..

그를 아버지의 품에 안겨드려야 할 사명을 움켜쥐고 품은 자들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좋은 것이 어디서 오는지를 모르는 자들에게..

복이 어디서 오는지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복 받는 길을 바르게 제시해 주며 그 복을 함께 나누는 자들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이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앞에 나아가면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소자야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고 해서..

마치 구원의 동력이 사람에게 있는 듯 착각할 수 있으나..

사실은 하나님이 그에게 성령을 물처럼 부어주셔서..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큰일을 믿는 믿음이 생기게 하셨던 것입니다.

12년 동안 혈루 증을 앓던 여인이 주님의 옷자락을 만져서..

그때문에 병이 나았다는 것을 강조하면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율법의 관점에서 본 결과일 뿐입니다.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낫겠다]는 믿음이 그녀에게 먼저 있었기 때문에..

병이 나은 것입니다.

내게서 발산된 믿음으로 병이 나았다면 그것은 큰 문제입니다.

그 믿음이 옅어졌을 때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노력에 의해 치유되었다면..

재발했을 때 믿음을 간단히 포기할 수 있습니다.

율법을 관리하고 있는 천사의 손길에 의해 병이 낫고..

사람이 그런 천사의 손길에 이끌리고 있다면..

그 결말은 고생이고 저주입니다.

율법으로 다스리던 천사가 오히려 나를 수종드는 천사로..

그 위치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사람이 율법아래 매이지 말고..

복음 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율법을 사랑했습니다.

율법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인 줄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확실히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으나..

인간적으로 그 말로는 비참했습니다.

가정적으로도 비극입니다.

아들이 아비를 죽이고 왕위에 오르겠다고 반역을 일으켰는가 하면..

배다른 오빠가 배다른 여동생에게 강간을 자행하고..

그로 인하여 형제에게 죽임을 당하는..

참으로 그는 분주하고 안식 없는 인생을 살았던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엿볼 수 있습니다.
 

내가 죄를 저질러서 그분이 고난을 받고 죽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만든 율법을 폐기하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법을 내신 이가 죽으심으로 그 법은 자동폐기 된 것입니다.

사람이 힘써 그 법을 세우려고 노력하기는 해야 하겠지만..

예수안에서 더 이상 그 법의 저촉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분은 죽을 권세로 죽으시고 다시 살 권세로 부활하셨습니다.

아담은 오실자의 표상입니다.(롬5:14)

모세는 복음과 율법의 모형이고 그림자이고..

부활하신 예수는 그 실체입니다.

또한 부활한 주님은 우리의 실상입니다.(히10:1) 

예수가 사흘을 무덤에 계실 때는 여자가 산고를 겪을 때와 같습니다.

해산의 고통입니다.(히16:7,16,21)

율법은 돌에 써서 속이고 죽이는 법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내안에 계신다면 그 어떤 영적존재도 내게 접근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율법적인 관점에서 살면 생활 속에서 우상을 만들게 되고..

율법적 관점으로 살게 되면 생활 속에서 고통의 십자가를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안식일이 우리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율법적 점에서는 못 섬기면 저주받으나..

사람이 복음으로 살아서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게 되고..

마음을 다하여 사랑으로 섬기는 생활을 하다보면..

육신의 부모는 누가 강제로 안시켜도 저절로 잘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오, 나의 하나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는 밤에 일어난다.  (0) 2009.12.04
복을 선물로 받은 사람은...  (0) 2009.11.29
하나님이 이미 다 하셨습니다.  (0) 2009.11.10
내입장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0) 2009.11.05
천상의 존재...  (0) 2009.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