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제는 온전한 헌신을 뜻합니다.
교회생활이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헌신의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위하여 아들 예수를 죽는데 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 그 무엇으로도..
하나님이 아들을 통하여 하신 그 큰 은혜를 우리는 갚을 길이 없습니다.
그 은혜가 감사하여 몸과 마음의 표현을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 아들들과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명하신 대로..
서원제나 화목제나 낙헌제로 번제를 드리려거든..
흠이 없고 온전한 것으로 드리되, 눈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가 있는 것이나 괴혈병이 있는 것이나..
비루먹은 것을 드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레22:17-22, 신15:21)
하나님께 드리는 이러한 감사제는..
베푸신 은혜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교회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마음은 사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며..
육신의 때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어서..
사랑을 느끼며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마음을 다하여 사랑으로 기릅니다.
마음을 지으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요구하십니다.(신6:5, 마22:37)
이와 같이 십계명 중에도 1-4의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고..
5-10의 계명은 사람을 그와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마음이 떠나면 떠났다는 것을 속이고 감추려고 노력하나..
생활과 태도로 선명히 나타납니다.
사람이 마음이 더러우면..
생각도 더러워지고 입의 말도 더러워지고 행위도 더럽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5:17-20)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에게서 마음이 떠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하찮게 여기고 번폐스럽다고 말하였습니다.
마음이 떠나니 하나님께 경배하는 일보다 세상일이 더 중하게 여겨졌습니다.
번폐스러워서 벧엘과 단에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자기들의 필요와 편리를 따라..
예루살렘이 아닌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형상으로 신상을 만들고..
그것을 여호와라고 일컬었으며..
하나님이 제정하신 절기도 자기들 편한대로 날짜를 바꾸었습니다.
그 결과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남 유다는 바벨론에게 참혹하게 멸망하였습니다.
포로로 잡혀갔었던 사람들이 7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포로전이나, 포로 신세였을 때나, 포로에서 해방된 때에도..
이스라엘 자손들의 태도는 변함없이 더러웠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제물이나 예물을 좋은 것으로 드리지 아니하고..
병든 것, 눈먼 것, 저는 것 등.. 쓰레기들을 드렸던 것입니다.
번폐스럽다는 말은 번거롭고 귀찮다는 소리입니다. 짜증난다는 소리입니다.
마음이 잔뜩 불편하다는 소리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예물을 드리고 헌신하며 섬기고 그 말씀을 경청하는 일이..
그렇게도 번거롭고 귀찮고 짜증납니까?
교인이라면서 그리스도 예수의 몸 된 교회에서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있다면..
악한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습과 같은 짓을 저지르는 모습입니다. 그들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그러지 말라고 하셨지만..
마음 떠난 그들의 악행은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보내셔서 최후통첩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내게 등을 돌린 것이 나를 얼마나 괴롭게 하였는지 알도록..
나도 너희에게 잠시 등을 돌리겠다]는 뜻입니다.
이게 신구약 ‘중간기’라고도 하고 ‘침묵기’라고도 하고 ‘암흑기’라고도 일컫는..
예수가 그리스도로 오시기까지의 이스라엘 민족의 끔찍한 400년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우리의 교회생활을 깊이 한번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신다면 그것처럼 끔찍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면 인생에게는 암흑입니다.
마음이 떠나서 교회생활이 형식에 그친 모양이라면 가증스러운 모습입니다.
하나님 앞에 더러운 떡을 드렸던 이스라엘 자손들과 다름없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큰 죄악입니다.
죄를 저지르고 있는데 하나님이 책망하시거나 징계하시지 않는다면 끔찍한 일입니다.
죄를 범해도 침묵하시고 부르짖어도 침묵하신다면 끔찍한 일입니다.
감사한 일이 생활 속에 널려있어도 하나님께 감사로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그냥 우연히 일어난 일로 치부한다면 하나님 앞에 가증스럽고 더러운 모습입니다.
교인들이 즐거운 일을 만나면 찬송해야 하고 괴로운 일이 생기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좋은 일을 만나도 찬송하지 아니하고..
괴로운 일을 만나도 기도하지 아니합니다.
고난을 당하면 기도는 안하고 원망부터 쏟아냅니다.
사람이 육신의 때를 살아가는 동안 눈앞에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악한 원수마귀의 역사로 인하여 고통스러운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때는 하나님께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침묵하신다면 그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면 우리의 인생길은 암흑기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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