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을 신봉하던 때를 살던 사람들은 율법의 제재를 받고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율법은 사람의 숨은 죄를 드러내게 하는 권능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건한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어떤 계기로 자기에게서 숨어있던 죄를 발견하고..
절망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려고 속죄제를 제정하셨고..
그것으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속죄제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의식입니다.
이스라엘과 세계 모든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좋은 계획들은..
사람들 눈에 고약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사건들, 그 짧은 면면을 볼때..
저주와 형벌로 보이는 사건들도 길게 보면..
결국은 영원으로 이어지는 생명과 복으로 연결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하나님이 선택하셨고 특별하게 총애하셨다고 여기면서도..
그들이 징계를 받고 멸망하였던 것은..
하나님을 배반하였기 때문이고 율법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약성경을 많이 읽을수록 구약성경에서 율법적 요소들을 발견하고..
모든 구약성경이 율법만을 강조한 듯 오해합니다.
그러나 누구든 구약성경을 성령의 조명에 따라 자세히 살피면..
구약성경 어디에서든지 거기에서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읽게 되고..
거기에서 그리스도와 그로 말미암은 복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유다왕국의 멸망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영원한 희망의 말씀을 뿌리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좋은 말씀들이 당장에 일어날 줄로 생각하고 덤비지만..
사실 대부분의 말씀들이 당대에 나타날 일들이 아니고..
먼 훗날에 있을 일들을 미리 말씀하신 것뿐입니다.
야곱 자손들이 율법을 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방나라들을 동원하여 징계하시는 듯 말씀하셨으나..
그것은 율법아래에 사는 삶의 실상을 말씀하시려는 것이고..
복음 안에서는..
그보다 더한 범죄 속에서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받았던 형벌을 면제 받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주시려는 계획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예레미야 31장 27절부터 40절까지의 기록된 말씀은..
그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명료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 씨를 뿌리되..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뿌리겠다는 것입니다.
짐승은 그야말로 짐승의 짓을 합니다.
짐승에게 사람이 할 일을 맡기면 일을 그르칠 뿐입니다.
하나님이 법궤를 메는 일을 사람에게 맡기셨으나..
사람이 그것을 짐승에게 메우려 했을 때 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사람은 사명을 짊어지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날뛰지 않습니다.
그러나 짐승이 사람의 사명을 짊어지면..
자기가 어떤 귀한 사명을 짊어졌는지 곧 잊어버리고..
배가 고플 때가 되면 미친 듯이 날뜁니다.(삼하6:3-7) 그러나 사명자는 먹고 사는 일 때문에 사명을 버리지는 않습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돌비에 새겼습니다.
그것은 종이 주인의 명령에 따라 가져온 것입니다.
종은 법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아들은 은혜로 살아갑니다.
아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복음은 또 다른 법을 가져왔습니다.
그 법은 돌비에 새기지 아니하고 사람의 마음에 새겼습니다.
율법은 그것을 범하는 자마다 자손 3-4대가 대를 이어 저주를 받습니다.
그러나 아들로 말미암아 온 새로운 법은 대를 이어 저주받지 아니라고..
거부하면 자기만 멸망합니다.
율법은 지키는 자가 겨우 칭찬 몇 마디 받고 조그만 상을 받을 뿐이나..
복음은 그 안에 있으면 모든 좋은 것을 선물로 받아 살고..
마음을 다하여 지키면 그 나라에 가서는 더 좋은 것을 상으로 받습니다.
율법은 사람의 노력을 강조하며 ‘여호와를 알되 힘써 알라’고 외칩니다.(호6:3)
그러나 복음은 힘써 알려고 노력하라고 외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와 하나가 되기만 하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렘31:34)
이 좋은 일을 위하여 마침내 예수가 그리스도로 오셨습니다.
그가 사람 눈에 초라하게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셨습니다.
‘초라한 모습으로 성을 들어오는 자가 바로 그이다’라는 예언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갖고 그의 입성에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셨습니다.
그는 초강대국 이스라엘을 건설하러 오신 것이 아니고 죽으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고난을 받고 죽어서 성령이 사람과 하나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잉태하고..
비로소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한 것을 알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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