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란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켜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입으로는 회개한 것 같은데..
그 삶을 보면 하나님께 돌이킨 흔적이 안 보이는 것입니다.
악한(나쁜) 나무는..
세상 적이요..
정욕 적이요..
마귀적인 열매를 그 삶에 나타낼 뿐입니다.
세상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그 사람의 생각이나 입의 말이..
세상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란..
사람이 삶에서 좋은 나무가 되어 좋은 열매를 내는 것이고..
하나님께로 몸과 마음을 돌이킨 사람으로써..
그 삶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인데..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과 관련한 그 어떤 것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이 내신 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무늬만 믿는 자이고 그 삶은 아니었던..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율법사들을 대하여 주님은 노하셨습니다.
실상 회개의 열매는 사람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 회개의 열매인데..
그것은 사람의 노력이 아니라..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권세..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마3:8-10)
회개의 열매는 사람의 노력으로 맺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돌이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열매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신분이 회복된 자는 더 이상 탕자가 아닙니다.
아버지 품으로 돌아온 자는 과거의 생각과 말과 삶에서 벗어나야합니다.
더 이상 과거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의 생각으로나 눈에 보이는 대로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달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서..
아직도 거지근성으로 찌든 탕자의 모습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아들의 신분을 회복하여 뻔뻔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까!
예수 믿는 우리의 신앙생활은..
면목이 없어서..
죄책감으로 잔뜩 주눅이 든 채 종교생활로 날세월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그러한 모습을 원치 않으십니다.
좀 뻔뻔스러워도 괜찮습니다.
잘한 일이 하나 없는데도 마음껏 받아 누리며 행복해 하는 것이..
아버지가 바라시는 일입니다.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탕자가 할수 있는 최대의 효도입니다.
그 일이 비록..
내가 자존심이 상하고 멋쩍은 일일지라도 과감히 할수 있는 것은..
처참한 몰골의 나를 더럽다 아니하시고..
품에 안아주시며, 환영해 주시고, 씻기시고, 입히시고, 먹이시고, 마시우고..
풍악을 즐기게 하시는 아버지께..
마지막으로 할수 있는 진정한 효도이기 때문입니다.(눅15:11-32)
하나님의 좋은 일에 일군으로 쓰임 받는 자들은..
스스로 자신을 [주의 종]이라고 할수 있는 자들입니다.
그렇게 깨달은 자들은..
자기의 소유물을 더 이상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셔서..
주님의 일에 사용할수 있는 [주님의 것]이라고 여깁니다.
종은 자기 것을 사용하여 주의 일을 하면 안 됩니다.
우쭐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종은 주인의 것으로 주인의 일을 할 뿐입니다.(갈5:22-23)
주의 종들이 예언한다면서 성경의 약속의 말씀이 아닌..
자기의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예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이므로 약속의 말씀에 따라 말씀위에 서서 살면..
반드시 기적이 일어나고 복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이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으로가 아닌 것들은 예언이 아니라..
점괘(占卦)를 말하는 사술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한 점쟁이들이 도처에 널려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은 없어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선언하면..
그 선포에 따라 이적과 표적이..
교인들의 삶의 중심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길흉을 점치는 것과 예언을 혼동하는 어리석음이..
어떤 기도원들에서, 어떤 교회에서 넘치고 있습니다.
금과 은으로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수도 없이 그들의 생활의 불편을 해소시켜 주려고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으나..
몸을 부리듯이 기대오는 교인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이려는 목적에 따라..
어떤 교인들의 병원 가는 일로..
시장 보는 일로, 미장원 가는 일로, 운전기사 노릇도 마다하지 않았으나..
그들의 근본적인 생각을 변화시키지는 못하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삶에 기적을 불러오는 것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뿐이었습니다.
죽으나 사나 말씀을 들으러 나오는 교인은..
기적의 현장의 주인공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나..
생활의 불편을 해소시켜 주기만을 바라고..
목사를 교묘하게 이용해 먹던 교인들은..
자기들의 기대가 충족되지 못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습니다.
[행하라]는 말씀이 부답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교인 노릇]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경청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마음에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이 새겨집니다.
세상살이에 깊이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희미해져가는 그 하나님의 형상을 선명히 되살아나게 하는 힘은..
오직 그분의 말씀을 경청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행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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