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 방

동창회...

순악질 의자왕 2004. 3. 15. 17:36

지금부터 40여 년 전 그때의 아이들은 춥고 배고픈 시절을 살았습니다.

6.25 동란이 끝난지 얼마 안 된, 폐허 위에서 탄생한 목숨들이었지요.

모든 것이 부족한 가운데서 살았기 때문에 아련한 추억이 많은지도 모릅니다.

선생님 한 분이 맡은 아동의 수가 60명이 넘었고..

아이들도 하나같이 꾀죄죄한 몰골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머리에 시커먼 보릿니와 그놈이 깔긴 서캐가..

불쌍한 어린것들의 머리카락 마다에 허옇게 붙어있었고..

시린발 녹이거나 발가락사이에 난 땀 한 방울 흡수하지 못하는..

구멍난 나이론 양말로 한 겨울을 나야 했고요..

바지 무릎과 엉덩이는 헌 옷가지로 기워서 입었습니다.

'점심 굶는 사람 손들어봐’ 하고 선생님이 소리지르면..

거의 반절은 손이 올라갔습니다.

이름을 기록한 후에 ‘하루 한끼만 먹고 있는 사람 손들어봐’ 하면..

여기저기에서 천천히 손들이 올라갔습니다.

배급을 주려고 그랬지요.

배급이래 봐야 옥수수 껍데기 가루 낸 것과..

가루우유(미국에서 보내온 구호품) 한 웅큼이 전부였습니다.

숙제할 시간은 많지 않았습니다.

학교 갔다 집에 돌아오면 소를 몰고 풀 뜯기러 나가야 했고요..

일하러 나가신 엄마대신 어린 동생 업어 길러야 했고요..

호미 들고 보리밭, 밀밭 매러 나가기도 했습니다.

어린아이들의 삶이란 게 재미는커녕 고통스럽기 그지없었지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억지로 학교에 다녔기에..

숙제 같은 것과는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

많은 아이들을 통솔하기가 힘겨웠던지, 선생님의 성깔도 참 대단했습니다.

일제의 잔재인 군사문화가 판을 치던 시절이었기에..

아침 조회 때마다, 헐벗고 굶주린 그 불쌍한 어린것들을..

여름에는 땡볕에, 겨울에는 살을 에는 추위에 줄맞추어 세워놓고..

교장을 위시하여 선생님들이 차례로 훈시하는 데에 질려서..

자세가 흩어지기라도 하면 사정없는 폭력이 가해졌으며..

지겨운 아침 조회가 끝나고 교실에 들어갈때도..

군대 제식훈련 하는 것처럼 구령에 맞추어..

고함을 질러대며 행진을 하였던 것입니다.

국민학교가 무슨 군댑니까!

힘겨운 삶에 지친 어린것들에게 선생님들은..

사랑의 매가 아닌 감정의 매, 분풀이의 매로써 다스렸던 것 같았습니다.

머리는 허옇고 얼굴은 짜글짜글한 중늙은이들이 되어서야..

조금 여유가 생겼는지 초등학교 동창회를 하자고 해서 나갔더니만..

‘국민학교 시절’ 하면 ‘매맞은 기억 밖에 없다’고들 합디다.

영양실조로 삐삐 마른 가여운 어린것들을..

‘군대 빠따치듯’하였으니, 참 잔인도 하셨습니다.

아마 제일 무서웠던 선생님을 저의 동문들이 초청하였던가 봅니다.

그 선생님은 연신 미안해하시면서 한편으로는 무척 고마워 하셨습니다.

그렇게 가혹한 환경에서도 이처럼 잘 성장하여 장년이 된 제자들을 앞에 두고..

선생님은 감회에 젖은 듯 목소리 마저도 떨리셨습니다.

그 악독한 선생님께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시고..

그 옛날 자신이 가혹하게 대하셨던 그 제자들을 위해..

참회하는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셨을 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었습니다.

제자들 가운데 못난 것이 목사노릇 한다는 사실을 아시고 얼마나 감격하시는지요..

무척 면구스러웠습니다.

초등학교도 채 졸업하지 못하고 서울로..

식모살이를 위해 정든 부모형제 품을 떠나야만했던 동문도 있었고..

공순이 공돌이로 어렵사리 기반을 잡아 결혼하여 애들 낳고..

훌륭히 가장노릇 하고 있는 동문들을 생각하면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동문들 가운데 사기꾼이나 파렴치범이나 도적, 강도 등..

흉악 범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필자는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기분좋은 것은 동문들 가운데 국회의원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저녁상을 앞에 두고 6학년 때 담임하셨던..

그 무서웠던 임종대 선생님이 못난제자에게 축복기도를 부탁했을 때..

지독한 매 타작을 했던 그 선생님을 위해 벅찬 감동가운데 마음껏 축복하였고..

그 어려운 환경을 헤치고 훌륭한 장년으로 성장한..

우리 사랑하는 동문들을 위하여, 그들의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행복으로 복을 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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