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이란 절대자 하나님께서 인간역사를 계획하신대로 차례차례 이루어가는 것을..
선지자들에게 미리 알게 하셔서 말한 내용을 일컫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알게 하신 것만 말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말해주지는 못하였습니다.
백성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만 콕콕 짚어서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거짓선지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사람들의 궁금증과는 아무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인간역사의 여정을 당신의 계획대로 엮으시고 이루어가십니다.
눈으로 볼 수 없으나,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임을 인정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독실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독실한 사람들마다 선지자들의 말을 가슴깊이 새겨들으려 하고..
하신 말씀을 마음에 담아 간직하려고 하였습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분주한 생활 속에서도..
흘려 떠내려가지 않게 지키려고 피를 흘리기까지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이게 믿음의 사람들의 참 모습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생이 한번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 대단히 잘못된 것임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히9:17)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들은 죽어도 다시 살아서..
제 2의 생, 영원한 생을 누리게 된다고 하는..
이 ‘전도의 말’을 마음에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난다면 어떤 몸으로 다시 살아나게 된다는 말이냐고 힐문합니다.
대단히 어리석은 힐난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신비로 가득합니다.
물고기의 세계에서는 성을 전환하는 물고기도 있습니다.
감성돔은 2년동안 수컷으로 살지만, 그 다음부터 4년동안 암컷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용치, 황돔, 놀래기 그리고 드렁허리는 암컷으로 태어난 뒤에 일부가 수컷으로 변합니다.
거북이는 알이 있는 장소의 온도에 따라 성별이 달라집니다.
건조하고 더운 장소에 있는 알에서는 수컷이 되어 나오고..
적당한 온도에 있는 장소에서는 암컷이 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영하의 날씨에서도 거미는 얼어 죽지 아니하고..
봄이 되면 다시 살아나서 움직입니다.
지렁이는 암수 동체로 존재하기도 합니다.
곡식이나 그 밖의 식물들도 형체가 그대로 나고 자라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씨앗알갱이를 뿌리면 그것이 싹이 트고 자라서 형체를 이룹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신비는 이러한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부활이고 신비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믿는 자의 부활은 같은 차원의 부활입니다.
달걀에서 병아리가 나오듯 하는 부활이 아니고..
다시는 죽지 아니하는 영생의 부활입니다.
지금 우리가 육신의 때를 살아가는 목적은..
부활의 그때를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그날에 받아 누릴 영광스러운 상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육신은 영혼을 담는 그릇입니다.
육신이 주체가 아니고 영이 인간의 주체라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바울선생은 육신을 가리켜 ‘장막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장막집은 무너져버릴 날이 반드시 옵니다.
한시적인 장막집은 곧 무너지지만..
영혼의 그날에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영원한 집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날은 심판날입니다.
심판날에 벌거벗은 자들도 있고..
화려하게 옷 입은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고후5:10)
이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옷을 덧입기 위하여..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은 억울한 죄목으로 악형을 받되..
구차하고 비굴한 모습으로 목숨을 구걸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믿음을 움켜쥐고 놓지 않기 위해서..
수치와 모욕 받는 것을 주저하지 아니하였으며..
채찍질과 결박과 감옥에 갇혀 고통 받을 것을 알면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습니다.
육신적으로는 지극히 연약하였으나..
주와 복음을 위하고 믿음을 지키는 일에는 대장부로 행하였으며..
비루한 옷을 입는 것이나..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고통과 가난에 찌들어 고생하는 것을..
마다하지 아니하는 독실함이 있었습니다.(히11:35-40)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할 때에는 하나님께 대하여..
아쉽고 가슴이 저리는 심정으로 그 앞에 나아갑니다.
가난에서 벗어낫다 싶으면 곧 마음이 느슨해지고..
뜨겁던 신앙도 시들해져 버립니다.
몸이 아플 때에는 간절한 심정으로 그분 앞에 나아갑니다.
건강문제가 해결되면 곧 아팠을 때의 그 사모하는 심정도..
어느새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듯 교회생활을 부담스러워합니다.
자녀들의 진학문제나 취직문제와 결혼문제를 두고..
안타까운 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찾습니다.
등 따습고 배부르면 하나님께 대하여 소홀해지고..
주와 복음을 위한 열정도 식어버립니다.
세상일에 파묻혀서 살다보면..
그나마 남아있던 믿음은 흔적만 남아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게 사람의 본모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말씀을 보내셔서 독려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하라고 하시고..
정신을 차리고 위엣 것을 바라보고 세상을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바울선생은 자기의 몸이 소원하는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운 것으로 여겼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고상한 것이라는 것입니다.(빌3:7-8)
여기의 삶은 잠깐이고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 것입니다.(빌3:20)
사람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의 삶이 나그네의 때라는 사실을 곧잘 잊어버립니다.
여기는 영원한 곳이 아니라는 말을 수시로 들으면서도..
여기에 뿌리를 박고 다른 것은 생각하지도 아니하고..
지극히 작은 것들에 목숨을 건 듯이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의 육신의 때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을 감당하기 위하여 힘쓰고 노력할 때에..
하나님께서 힘주시고 능력도 주시고 성취감을 주십니다.
다만 한 가지 꼭 기억하여야 할 것은..
경기하는 자마다 법에 정한 대로 하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딤후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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