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하나님!

목사노릇

순악질 의자왕 2011. 12. 3. 13:46

목사노릇은 먹고 살기 위한 방편으로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좀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명예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돌진해야 하는 자리도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살아야만 하는 자리도 아니고..

무시당하면서 욕 얻어먹어야 하는 자리도 아닙니다.

소명을 받았으면 지체없이 떨쳐나서야 하는 직분이지만..

누가 강제로 시켜서 하는 자리는 더욱 아닙니다.

아무리 궁핍해도 거지근성에 붙잡히지 말아야 하고..

없으면 하늘만 쳐다보는 줏대는 반드시 있어야합니다.

자녀교육에 대한 걱정이 앞서 있다면..

일찌 감치 목사노릇 때려치워야 하고..

먹고 살기가 팍팍해서 견디지 못하겠으면..

조용히 사직을 하고 직업을 가져야합니다.

보통사람들의 평균적 수준에 의한 보편적인 생활에서 생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의해 목사노릇이 방해받고 있어도..

기꺼이 감수할 의지가 분명치 않다면 애당초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소립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에 대한 긍휼의 마음이 없다면..

목사노릇에 대한 생각은 심각히 재고해 보아야합니다.

목사노릇이 정말 어려운 것은..

[목사가 되면 유리로 만든 집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목사노릇이 정말 스트레스가 많이 쌓일수 밖에 없는 것은..

어렵게 목사가 되었어도 그러한 사실을 곧잘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목사노릇이 정말 조심스러운 것은..

조그만 실수도 금방 밖으로 드러나 사람들에게 광포되어..

비난의 화살이 빗발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목사도 자기와 같이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죄와 허물에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게 되기를 고대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잘 포장하고..

사람들 앞에 허점을 잘 드러내지 않는 훈련을 받은 목사는..

존경받고 위대하게 여김을 받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그리스도를 옷 입은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사가 목사 노릇을 깔끔하게 하든 어설프게 하든..

겸손하기만 하면 고약한 일만 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분에 넘치게 좋은 것들을 하나님께로부터 선물로 받는 일이 많습니다.

겸손은 온유와 동격입니다.

길이 잘 든 소처럼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여 사는 종을 [겸손한 자]라고 하고..

하나님 말씀이라면 그냥 껌뻑 죽는 자를 [온유한 자]라고 합니다.

자기 내면의 세계가 어떠함을 정확히 인식하고 사는 사람을..

겸손하여 존귀에 처할 사람이라고 합니다.

겸손은 실로 존귀의 앞잡이입니다.(잠18:12)
 

좋은 목사는..

선악을 분별하는 기준을 자기에게 두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삽니다.

그러나 좋은 목사도..

때때로 그것을 잊어버려서 허둥대고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창3:5)

목사는 최고의 지위에 있는 자이나 심히 위험한 자리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목사나 평신도나 같은 레벨일 뿐..

목사가 평신도를 결코 지배하거나 군림하는 지위가 아니라며..

목에 핏대를 세웁니다.

그것은 아마 베드로 전서 2장9절을 근거로..

[만인제사장설]에 힘을 받아서 주장하는 소리겠으나..

목사는 벧전 5장 1-3절에 기록된 것과 같이..

장로로 불리는 자들로서..

영광스러운 직분임에 틀림없습니다.

장로라 함은 재판자라는 뜻입니다.

평상시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삼아 옳고 그름을 판결하는 직분이며..

공동체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을 때는 친히 야전군 사령관노릇을 하며..

밤을 낯삼아 하나님께 기도하고..

공동체를 위기에서 구하려는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는 자라는 뜻입니다.

다만 자기에게 맡겨진 그리스도의 양 무리를 돌보되..

세상 권력자들의 행태와 같이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며..

더러운 잇속을 차리기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장차 있을 아름다운 날과 그 영광을 바라보며..

즐거운 뜻으로 양들을 치리하고 돌보아야 하는 직분이라는 소리입니다.

목사들이 이러한 본분을 망각하여..

의무는 행하지 않고 권리만 챙기려할 때..

심각한 저항에 부딪치게 되고..

교회 밖으로부터도 거센 비난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목사노릇은..

모든 것이 내생각대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성경말씀을 통하여 살펴서 나타내는 나팔이어야 하며..

자기 입으로 쏟아낸 [하나님의 소리]대로..

자기도 그렇게 살아내어..

전능하신이의 능력을 나타내고..

부모나 자식이나 먹고 살 터전에 대하여는 근심걱정을 초월한 삶을 살 때..

비로소 하나님 앞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요5:30)

우리는 대개 사람 앞에 굽실거리는 것을..

겸손의 모습이라고 잘못알고 있습니다.

제 꼬락서니를 똑바로 알고 있기에..

남의 추악한 모습에도 긍휼의 마음을 품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큰 은혜를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은혜란 대가가 아니고 선물입니다.(약4:6)

자기의 꼬락서니가 어떻다는 것을 잘 알기에..

스스로 자신을 낮출 수가 있고..

스스로 낮아진 목사를..

하나님은 뜻밖의 방법으로 높이시기도 합니다.(빌4:10)

강간을 통하여 이루어진 결혼은..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결혼임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목사노릇을 잘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마치 부부관계와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특히 목사의 진실한 마음을 얻고자 하시는 분입니다.(빌2:5)

현재 목사 노릇을 하고 있는 자들 중에는..

[천국과 지옥이 없다고 믿는 자들]이 더러 있습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천국이 없다고 믿고 있기에 목사가 교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이 있다고 확실하게 믿는 자는 교만할 수 없습니다.(잠18:12)

목사로서 아직도 먹고 사는 문제..

자녀들의 교육문제..

부모 형제에 대한 문제로..

또 무엇인가에 쫓겨 심히 근심중에 목사 노릇을 하고 있다면..

내가 교만하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또 육신에 매인 그 어떤 문제로 인하여..

목양이 매끄럽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

나는 아직도 훈련 중인 목사에 불과하고..

혹독한 훈련의 때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결정적인 까닭은..

내가 심히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또 내가 목회에 실패하고 있는 결정적인 까닭은..

교인들이 잘못했을 때..

혼내고 야단쳐야 하는 직분으로 잘못알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목사의 직분은 오직 형제들을 축복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것인데 그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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