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에게서 썩은 물이 나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고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어떤 목사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시체에서 냄새가 나고 썩은 물이 흐르는 것이 당연하듯이..
사람에게서 죄의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죄인인 사람에게서 무슨 칭찬 받을 일이 있겠습니까!
예수그리스도께서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몸소 겪으셨으니..
이제부터 사람은 칭찬 받을 그 무엇을 하든지 자기가 한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가능했던 일로 여기고..
칭찬 받을 그 일에 대한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칭찬 받을 일을 한 후에 자신이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광을 가로채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세상에 탄생할 때부터 이미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사는 동안 죄와 상관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 죄를 자신의 노력으로 부수어 버릴 능력도 없으나..
지금까지 수천 년에 걸쳐 부수려는 시도는 있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시도는 단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시체에서 썩은 물과 악취가 풍기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사람에게서 죄의 썩은 물과 악취가 나오는 것도 당연한 것입니다(롬3:9-18)
종교(宗敎)란..
사람이 섬길 신과 그 틀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신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기독교는 종교의 범주에 속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역사의 시작과 끝을 설정해 놓으시고..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을 섭리하고 계시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그 후에 하나님의 성령의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행2:1-47)
예수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복음은 빛을 발휘해야 합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바닷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목마름은 더하듯이..
사람이 자기의 능력과 노력으로 죄 문제를 해결하려고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끝내 절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율법을 던지시고..
그 가운데서 절망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율법으로 인하여 자기의 죄를 발견하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그 죄를 자신이 해결할 수 없음을 절감하여 하나님을 바라보고..
가인처럼 애타는 심정이 되어..
자비와 긍휼(矜恤)을 소원하는 인간이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죄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때문에 아들을 피 흘려 죽게 하시면서 까지 우리를 저주에서 건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탕자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그러한 심정을 정확하고 명료하게 그려낸 비유입니다(눅15:11-32)
사람들은 '사순절'이라는 절기를 만들어 놓고..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처형을 생각하면서..
[야, 이거 너무 염치없지 않은가]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그리고 부활절을 앞두고 이 기간 동안은..
적어도 염치없는 짓을 삼가자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거룩하고 경건한 체하여 스스로 알량한 위로를 잠시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러나 그렇게 노력해 보아도..
육체의 요구에 의한 죄와 수치는 털끝만큼도 줄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어 달리기 전에 처절한 고문 끝에..
자신이 매달릴 나무토막을 등에 메고 비참한 모습으로 골고다 언덕을 헤맬 그때..
많은 여자들이 예수님의 처참한 몰골을 동정하며..
슬피 울면서 따라갈 때의 그 장면을 떠 올려봅니다.
제자들은 모조리 도망쳐 버렸으나..
여인네들은 불쌍한 예수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동행해주고 슬퍼해 주었습니다.
도망친 제자들보다 그들이 더 양심적이고 훌륭해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그러한 모습을 괴로워 하셨습니다.
히죽거리며 따라가는 것도 좋은 모습은 아니었겠으나..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고 한마디 하셨습니다.
오늘날 사순절을 지키는 사람들을 보시면서..
그들에게도 그러지 않으셨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사람의 어떤 노력 행위가 그분을 기쁘시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분이 이루어놓으신 그 일을 믿어 드리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밤새 고문을 당하시고..
채찍(전갈)에 온몸이 갈가리 찢기시고..
기운이 소진하여 가는데도 참고 또 참았다가..
마지막으로 '다 이루었다'라는 고함 한마디 남기시고 운명하심으로서..
사람의 모든 '종교행위'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신 것입니다.
탕자로 살다가 염치없게도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던 그 사람의 모양으로..
하나님 앞에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어 탕자의 모습을 원하십니다.
열심히 일하고 대가(代價)를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한 것이 없이 죄의 가리우심을 받는..
그 행복을 안겨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롬4:4-8)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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