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먼저 보고, 먼저 알고..
그 말씀을 백성에게 일방적으로 선포하던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향해 불나방처럼 질주하던 백성들에게 인생의 바른길을 제시하되..
마음을 가다듬어 하나님 앞으로 속히 돌아오라고 경고의 나팔을 불던 자들입니다.
범죄하고 징계를 받아서 초라한 몰골로 절망의 나락을 헤매던 백성들에게..
희망과 위로의 말씀을 선포하던 자들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성실히 맡은 일을 수행하되..
자기의 생각이나 자기의 견해를 덧붙이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그대로 선포하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치고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다가 편안하게 세상을 떠난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사람의 눈에, 사람의 생각에 불행하게 보였으나..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그 하나님께로부터 위로받던 자들입니다.
엘리야는 모든 선지자의 대표 격인 선지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나그네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3년 6개월의 기근이 와서 모든 사람이 곤란을 당할 그때에..
하나님은 그를 사르밧에 사는 어떤 과부에게 보내셨습니다.
상황이 어려운 때에 좀 넉넉하고 부유한 사람에게 보내지 아니하고..
하필이면 가난이 극에 달한 사람에게, 그것도 과부에게 보내셨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먹고 사는 것이 사람에게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알게 하시려고 그러신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의 가루통과 기름병은 3년 6개월의 천재지변 중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어떤 사람이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이 부여되어 있다는 것과..
또 선지자 엘리야에게 주신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었으나..
과부에게 주신 것은 선지자를 공궤하는 사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병에 걸려 위중하다가 마침내 죽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과부의 죽은 아들을 다시 살려냈는데..
유대의 전승에 의하면, 선지자 요나는 바로 이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선지자들 중에는 진짜선지자들도 있고 가짜선지자들도 있습니다.
예컨대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는 진짜 선지자이나..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가짜선지자입니다.(왕상22:1-28)
진짜 선지자 중에 에스겔 선지자는 390일을 왼쪽으로 누워 자고..
오른쪽으로 40일을 누워 자면서 물과 음식을 죽지 않을 만큼씩 되어서 먹고 마시며..
똥을 바짝 말려서 불을 피워서..
그 불로 음식을 만들어 먹으라는 명령까지 받았습니다(겔4:1-17)
또 선지자 예례미야는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을 선포하다가..
바스훌(제사장, 성전의 질서유지 책임자)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한 후에..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습니다.(렘20:2)
이렇게 선지자들마다 그 사명을 다하기까지 극심한 고초를 겪었습니다.
이러한 연유에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요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하고 니느웨와는 정반대 쪽인 다시스로 도망쳐버렸습니다.
앗수르 제국의 수도 니느웨는 당시 인구도 많고 경제적으로도 부강한 곳이었으나..
전염병이 창궐하였고 정치적인 불안정으로 인하여 사회가 살벌하였으며..
도덕과 윤리가 바닥을 쳤고 종교적으로도 극한 타락의 길을 걷던 악의 소굴이었습니다.
더구나 앗수르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학대하고 착취하는 원수의 나라였는데..
그런 앗수르의 심장부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이..
어쩌면 극도로 혐오스러웠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엄습하였을 것입니다.
40일 후에 앗수르가 멸망할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왕과 모든 대소신료와 온 백성이..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하는 모습에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자..
요나는 극도로 분노하여 하나님께 발악하며 항의하였고..
하나님은 박 넝쿨을 통하여 요나의 잘못을 드러내시고..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나타내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사명 자는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 앞에 사적인 견해를 조용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사명 자는 아무리 괴로워도 사명을 붙들고 육신의 때를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명 자가 사명을 손에서 놓아버리면 그것이 사명 자를 공격하게 됩니다.
사명 자를 공격하던 그것을 다시 용기를 내어 잡으면..
그것이 사명 자를 돕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출4:2-4)
사명 자가 사명을 움켜쥐고 움직일 때 하나님이 위로하십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이 땅에서는 죽도록 고생하였으나..
영혼의 때에 하나님이 그를 위로하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모두 사명자입니다.
사르밧 과부도 사명 자입니다.
엘리야가 말씀을 맡은 사명자라면 사르밧 과부는 선지자의 공궤를 맡은 사명자입니다.
기근이 끝나는 날까지 마르지 않는 가루통과 기름병의 존재이유는..
사르밧과부를 위한 것이 아니고 엘리야 선지자를 위한 것입니다.
선지자 덕분에 과부와 그 자식도 기근시대 3년 6개월을 넉넉히 생존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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