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말 아시죠? ‘제 논에 물대기’라는 뜻입니다.
자기에게만 이롭게 되도록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는 소리입니다.
견강부회(牽強附會)라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다 붙여..
자기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고 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는 자칫 말쟁이들에게 속는 줄도 모르고 속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어떤 목적을 정해 놓고 부흥회를 여는 일이 자주 있어왔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이 말씀을 아전인수 격으로 받아들이고 견강부회 적으로 받아들이는 어리석음을..
주변에서 종종 발견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기만 하면 만사형통이 될 것처럼 강조하여..
교인들을 세뇌시키려 드는 사람들이 지금도 주변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성령 충만을 받고 기도만 열심히 하면..
이 지구상에서 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떠버리는 것입니다.
배금주의란 재물을 지나치게 숭배하여, 모든 판단기준을 재물에 두고..
크고 작은 일처리를 진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기가 막히게도 이러한 배금주의(拜金主義)가 한국교회에도 스미어 들어와서..
우리의 신앙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후에..
자기의 삶의 진행방향과 목적과 방법에 대하여 말씀하기를..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했습니다.
그 말끝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위대한 말씀을 고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이 배금주의자들의 말처럼..
풍부한 재물을 긁어모아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형편과 처지가 어떻게 돌변하든..
믿음으로 사는 십자가의 발걸음이 실족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소리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자기 자신의 육신의 때를 사는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고 저 하늘나라의 상급에 관한 일들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슴에 선명하게 새기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많이 한다는 어떤 사람들은(기도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기도가 만사형통인 줄로 잘못알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좋은 계획을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사적인 욕심을 따라..
발악하며 울부짖는 기도는 하나님 앞에 악독한 기도입니다.
기도를 하되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좋은 계획을 왜곡시키거나 변경시키려들지 않는 내용으로..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기도를 하면 분명히 영적세계의 문이 열립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신앙 바탕이 성경말씀에 기초하고..
예수 십자가의 복음에 터를 두고 그 위에서 기도를 하여야 올바른 기도입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지는 환영이 선명하며 영적감각이 예리하고 날카로워도..
그것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기준과 통찰력이 잘못되었다면..
문제는 심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애굽의 바로의 꿈과 야곱의 열한째 아들 요셉을 통하여..
하나님이 계획하신 7년 풍년과 7년 흉년은..
그 어떤 강압적 기도로도 변경될 수 없는 것입니다.
풍년이 지나고 흉년이 오는 것을 미리 알았다고 해서..
발악적 기도로 흉년을 풍년으로 바꿔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기도 자들이 그런 미련 곰탱이 짓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경제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삶의 초점을 경제에 맞추어놓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삶의 초점을 예수께 맞춰놓고 육신의 때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삶의 가장 큰 가치를 경제에 두고 있는데..
어느 날 경제가 붕괴된다면 그 인생이 어찌되겠습니까?
대번에 자살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 어떤 고난에도 자살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살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 오는 절망이기 때문입니다.
절망은 사람을 지옥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사람에게 절망이 오는 것은 그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이 절망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의 대상인 예수그리스도가 죽고 부활하지 못했을 때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한 좋은 계획을 이루기에 앞서서 큰 고통을 주셨다면..
기꺼이 감내하여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태동이라는 엄청난 일을 이루시기에 앞서서..
요셉에게 큰 고통을 주셨음을 우리는 유념하여야 합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신 말씀은..
슈퍼맨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형편과 처지에도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넉넉히 견딜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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