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하나님!

천국에서는 누가 큰자입니까?

순악질 의자왕 2016. 5. 2. 13:49

인생은 영혼과 육체가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 받는 유기적 관계인데..

성경은 예수 믿는 우리가 이 육신의 때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육신의 때의 삶의 목적]에 대하여 밝혀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영적세계와 눈에 확연히 보이는 물질세계가..

상호간에 그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 목적은..

영혼의 그날에 수여 될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크고 작은 상급에 관한 것입니다.

육신의 세계가 끝나고 영적 세계의 문이 활짝 열리는 그날에..

하나님 앞에서 육신의 때를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추상같은 결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선하신 독재자 하나님이 왕으로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육신의 때가 끝나고 영혼의 때가 시작되면..

곧이어 크고 작은 논공행상이 벌어질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큽니까?] 제자들이 예수께 대하여 쏟아낸 질문입니다.

그러니까 육신의 때에 어떠한 인생여정을 걸어간 사람이..

그날에 천국에서 대인(大人)으로 뭇사람 앞에 드러나겠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이 어떠한 윤리관을 가지고 육신의 때를 살았느냐에 따라..

영혼의 그날에는 [크다 작다]하는 논공행상이 주어질 것이라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현재 세상나라에서는 자기 PR시대니 뭐니 해서..

보통사람들과는 차별화된 자기만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고 부각시켜서..

남에게 선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의 최고의 가치는 ‘겸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겸손이라는 말을 왜곡되게 받고 잘못 받아들여서..

교회에서도 꼴불견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겉모양은 겸손으로 가장하였으나 감춰진 내막을 들춰보면 혐오스런 것들로 가득합니다.

[무엇인가 나는 잔뜩 알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겠다]는 음흉스런 심보를..

하나님은 겸손으로 인정하지 않고 계시다는 소리입니다.

겸손의 본뜻을 알지 못해서 벌어지는 수치스러운 모습입니다.

겸손이란 자기의 무능함을 알고 있는 태도입니다.

어린 아이는 경험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경외심이 가득한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나 어른들에게 자기를 전폭적으로 의지하면서..

가장 안전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함을 받자고 하는 전적인 의뢰인 것입니다.

인생이 [무언가 알고 있는 것이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어릴수록 부모 앞에서 자기를 낮추고 의지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자기 경험과 지식을 의지하여 앞길을 헤쳐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이처럼 그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따라가는 삶의 태도입니다.

이것이 하늘나라에서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겸손입니다.

눈속임으로 자기를 잘 보이려고 하는 짓은..

겸손을 가장한 교만, 악독하고 혐오스런 최악의 교만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신봉함으로써..

자기들이 이방인들과는 차별화 된 특별한 민족으로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율법이 기준이 되어 스스로를 이방민족과 자기들은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차원이 다른 인생들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안다는 것 자체가 교만이었습니다.

율법을 지식적으로 알고 삶에서는 동떨어진 몰골이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생활 속에서 융화되지 못하고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모습이..

오늘날 우리에게서도 보이고 있다면 자신의 믿음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볼 일입니다.

율법을 주신 본뜻은..

[그 어떤 인생이든지 율법을 들여다 볼수록 자신의 몰골의 추악함이 드러나게 되므로..

시선을 돌려 절망의 눈으로 하나님을 우러러 보라]는 것입니다.

율법을 파고들어 공부한 사람일수록..

자기 자신의 무능함과 절망스러움을 가슴절절 느끼고..

애절한 눈빛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구원의 하나님을 우러러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를 하나님께서는 [돌이키다]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몸과 마음과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태도를 다른 말로 ‘회개’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의 마음을 돌이키고, 몸을 돌이키고..

세상을 향해 쏘아보던 눈길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전환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교회가 세상을 문화적으로 선도해 나갔습니다.

이제는 기독교회의 문화는 퇴보하고 세상의 타락한 문화가..

광속으로 앞서 달려 나가고 있습니다.

옛날처럼 전도의 도구로 문화를 활용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이제는 있던 믿음 지켜내기도 버거운 시대가 왔습니다.

교회가 무속에 절어 있는 사람들을 전도한다며..

예배당에서 굿거리장단으로 흥을 돋우고 강신무를 추면서..

사람들을 예배당으로 끌어모은들 그것을 하나님이 좋아하시겠습니까?

그런 방법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믿음 있던 사람들까지도 실족케 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실족이 뭡니까?

발을 잘못 짚어 헛디뎌 고꾸라졌다는 소리입니다.

기독교회가 배타성을 잃어버렸다면..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예수 외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길이 없습니다.

이 길에서 벗어나 다른 길로 들어서게 하는 짓이 실족케 하는 악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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