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하나님!

침략군을 환영하는 나라도 있다!

순악질 의자왕 2005. 12. 14. 13:19

전쟁에서 패하면 국가의 기간산업(基幹産業)도 모두 파괴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때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나라의 거의 모든것이 파괴되었고..

도공(陶工)을 비롯한 나라의 기술자들이 대부분 일본으로 끌려갔던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알수 있습니다.

고려청자나 이조시대의 백자들을 재현하려고..

지금도 뜻있는 사람들이 고심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구한말에는 일본사람들이 이 나라를 집어삼킨 후에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하려고..

일본에 반항하던 독립 인사들을 가혹하게 다루었듯이..

미국은 미국에 반항하던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를 초토화시켰습니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고 보는 것은..

미국이 일본과의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소련이나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다시 재건하여..

완충지대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한국전쟁을 이용하여 일본이 다시 일어서도록 도왔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일본은 운이 좋았다고도 말할수 있을 것입니다.

 

앗수르의 살만에셀 왕은 BC730년경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하기위해서..

말썽을 부릴만하다 싶은 인물들을 모조리 본토로 사로잡아가고..

쓸모없다 싶은 사람들만 이스라엘 땅에 남겨두고 떠났으며..

영국이 오스트레일리아에 그랬듯이..

범죄자와 부랑아들을 대량으로 망국 이스라엘 땅에 이주시키는..

극악무도의 초토화정책을 썼던 것입니다.

이로써 사마리아는 종교적으로나 인종적으로도..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볼 수 없는 거름더미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BC714년경 앗수르왕 산헤립은 남쪽나라 유다를 침공하여..

모든 견고했던 성읍들을 함락시키고..

마지막으로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을 에워싼 후..

고도의 심리전(心理戰)에 돌입하였습니다.

그것은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예민한 부분이라고 할수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려는 시도였으며..

유다인의 신앙을 부정해버리게 할만한..

극악무도한 도발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마다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를 하나님 앞으로 가져오기보다는..

인간적인 상황판단과 능력을 얼른 계산하고..

해답이 보이지 않을 때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되어..

무당에게 달려가거나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

냉큼 포기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당시 유다의 왕이었던 히스기야는 인간적으로는 나약했으나..

신앙적으로는 훌륭한 왕으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절박한 상황에서도..

문제를 하나님 앞에 꺼내놓고 호소했던 것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공짜로 얻은 것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소홀히 생각하기 쉽습니다.

화투나 포커등 도박으로 번 돈을 [검불 돈]이라고 해서 쉽게 써버리는 것처럼..

우리가 일상적으로 흔하게 써왔던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물 쓰듯 한다]는 속담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공기 역시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너무도 흔해서 귀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이제는 좋은 물도 맑은 공기도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마셔야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선물로 주신 것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밖에 있는 [기혼]이라는 이름의 샘이었습니다.

북쪽 형제나라를 멸망시킨 원수 앗수르가 여세를 몰아 남쪽 유다를 침공할 기운을 느끼고..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선물을 지키려고 엄청난 공사를 벌였습니다.

그것은 기혼샘물을 예루살렘 성안으로 끌어들이는 대역사로서..

바위를 정으로 쪼아서 떼어내는 작업으로 성 안과 밖에서 터널을 뚫는 일이었습니다.

마침내 기혼샘물을 성안으로 흘러들어오게 하는 물길을 내고 성안에는 연못을 팠습니다.

기혼샘물을 가두어 두기 위해 파놓은 그 연못을 [실로암 못]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히스기야의 대역사를 귀하게 보셨던지..

침을 뱉어 진흙에 이겨 소경의 눈에 발라주시면서..

[실로암 못에 가서 씻고 오라]고 하셨고 소경은 눈을 떳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바라는 자들에게 결코 실망을 안겨주시는 법이 없습니다.

죄가 있고 없고 많고 적고는 그분의 긍휼에 조건이 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모든 인간은 이땅에 사는 동안 죄와 불가분의 관계로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의 소원대로 앗수르의 18만 대군이..

아침에 일어나보니 모두 송장이 되어버린 역사가 나타난 것은..

자기의 무력(武力)과 통치력(統治力)을 과신하고..

안하무인에 교만이 극에 달하여 하나님을 모독했던..

앗수르왕 산헤립과 오만방자한 그 부하들에 대한 형벌이었던 것이었고..

하나님을 끔찍히도 사랑했던 다윗 왕과 그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와..

특별히 유다왕 히스기야가 문제를 안고 하나님께 전심으로 매달렸던 결과라고 할수 있습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들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나라들은 자기나라를 침노하는 자들을 철천지원수로 여기고..

온 힘을 다하여 격퇴시키려고 하겠으나..

하늘나라는 침노하는 자들을 원수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히려 대대적으로 환영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침노하는 자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으나..

나라는 침노하는 자들에게 마음껏 차지하라고 기쁨으로 내어주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힘있고 오만방자한 자들이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힘은 있으되 지극히 겸손한 자들이 모든 좋은 것들을 차지하고 맘껏 누리는 나라입니다.
예수믿는 그 믿음은 구원의 본질이나..

신앙생활은 장차 있을 상급에 관한 것입니다.

침노하는 자세가 예수믿는 우리에게는 꼭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