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하나님!

부활의 그날을 꿈꾸며...

순악질 의자왕 2020. 4. 12. 15:26

사람은 누구나 부모로부터 육신의 때의 인생길을 시작했다가..
한번은 반드시 죽습니다.
죽음 이후에는 그것으로 존재가 공허하게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점입니다.
태아의 때가 끝나는 날은 육신의 때가 시작되는 날이듯..
육신의 때가 끝나는 날은 영혼의 때가 시작되는 날이라는 소리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짧게 끝나는 태아의 때가 인생의 목적지가 아닙니다.
태아의 때보다는 조금 긴 육신의 때가 인생의 최종목적지도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최종목적지는 하늘나라입니다. 행복한 중에 영생하는 그 나라입니다.
이 세상 모든 나라들은 날짜에 따라 부풀었다가 쪼그라지는 달처럼..
커졌다가 작아지기도 하고 세계패권국가가 되었다가 3등 국가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원히 견고합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은 그 나라의 1등 국민입니다.
육신의 때가 마감되고 영적세계가 우리 눈앞에 펼쳐질 그날에..
크고 작은 논공행상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로 오셔서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고..
고난 중에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은..
우리를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시려고..
먼저 그 모진 고통의 십자가를 짊어지셨다가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육신의 때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주께서 당부하신 말씀을 따라..
육신의 때를 살아가는 것이 가장 복된 인생길입니다.
무엇을 마음 중심에 두고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이 무엇입니까?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믿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머리로 아는 것을 말하지 아니하고..
약속의 말씀이 자기 마음과 생각과 언어 속에 녹아서 삶으로 나타날 때에..
비로소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에서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그리스도로 오셔서..
십자가의 고난으로 하신 그 큰일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어떤 믿음은 구원받을 만한 믿음인 반면..
어떤 믿음은 거짓된 믿음, 헛된 믿음도 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에 기록된 말씀을 살펴보면, 삶이 되지 않고 머리로만 알고 있는 믿음은..
헛된 믿음이고 죽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약2:14-26)
 
그러면 믿음이라는 것을 대체 무엇이라 확실하게 정의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그 속에 진실함과 성실함과 정직함과 충성됨이 있어야 합니다. 이게 참된 믿음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는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 직분을 맡깁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4:2)
입의 말과 몸의 행동이 독자적인 행보를 나타내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자기를 구원하지 못하는 거짓된 믿음, 헛된 믿음, 죽은 믿음일 뿐입니다.
육신의 때가 마감되고 영혼의 그 날이 오면..
주께서 판결하시되,..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선언하십니다.(마25:14-23)
마음이 진실하고..
무슨 일이든 맡은 일에 대하여는 성실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정직하고..
무엇을 맡겨도 최선을 다하여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열정이 나타날 때..
비로소 주께서 칭찬하실 만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선물로 받습니다.

그러나 그날에 칭찬과 상은 일한 것에 따라 받습니다.
믿음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하나님이 계명으로 주신 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아름답고 복된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그런사람에게 이 땅에서도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시지만..
그 나라에 가서는 더욱 크고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육신의 때에 씨를 뿌리는 사람들입니다.

무슨 씨를 뿌립니까?
썩어 없어지는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하는 것으로 거둡니다.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게 됩니다.(고전15:35-44)
신령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육신의 때에 육신의 몸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으나..
부활의 때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존재가 되기에..
신령한 몸이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때의 교회생활은 씨를 심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두고 교회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크고 작은 교회들이 수를 세기 어려울 만큼 많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 어떠한 사명을 받아 어떻게 일을 하든지..
있는 그곳에서 진실과 성실과 정직과 충성으로 맡은 일을 감당하는 것은..
그날에 받을 상을 바라보고 하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 그날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상과 책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고후5:10)
 
예수께서 피를 흘리시기 위해서 육신을 입고 오셨다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에 부활하셨습니다.
또다시 죽는 몸으로가 아니고 다시는 죽지 않는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첫 열매로 부활하셨습니다.
믿는 우리는 다음열매가 분명합니다.

그래서 부활의 그날이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