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사전에는..
선생님을 가리켜,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두루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선생님을 스승으로 부르며 존경과 예를 갖추어 대해왔습니다.
그래서 ‘스승’이란 말이 어디서 온 호칭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기가 막히게도 무당과 중을 일컬었던 데서 온 호칭이었습니다.
무격(巫覡)과 사승(師承)의 합성어쯤으로 여길만한 호칭이 스승이었던 것입니다.
무격이란 남녀무당을 일컫는 말입니다.
즉, ‘무’는 스승 무. ‘격’은 화랑 격으로써 무는 여자 무당을 가리키는 말이고..
격은 남자 무당을 가리키는 용어였던 것입니다.
또 민초들이 답답한 문제에 부닥쳤을 때 무당을 찾아가서 자문을 구하였는데..
‘문제를 푸는 방도를 가르쳐 주는 자’라는 뜻으로..
여자 무당을 스승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당시 무당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것입니다.
일제 36년의 통치를 받는 동안..
우리민족은 저절로 원치 않은 일본문화에 젖어 살았습니다.
민족이라는 게 언어와 문화와 생활습관이 같고..
인종적으로도 혼혈이 된다든지 하면 같은 민족으로 여겨지기 마련입니다.
이민족이라고 할지라도..
지배계층의 세뇌작업에 의해 강제로 동화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일제는 한민족을 일본민족에 동화시키려고 창씨개명은 물론이고..
학교에서도 일본 선생들을 데려다가 우리의 어린학생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고..
한글을 쓰지 못하도록 강제하였다는 어른들의 증언이 있습니다.
일제가 물러가고 해방되었다는 지금도 우리는 우리 생활 속 곳곳에..
일본의 잔재들이 뿌리 깊게 박혀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400여 년 동안 애급에서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애굽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 애급사람들이 하는 말을 하고..
애굽사람들이 섬기던 신을 섬기며 애굽사람처럼 살았습니다.
이러한 생활 습관들은 한 번 물들여지면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400여 년의 애급의 찌꺼기들을 떨어내기 위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광야로 이끌어 내신 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고 새로운 관습과 생활체계의 기준을 마련하고..
모세선생님을 통하여 40년 동안 훈련시키셨습니다.
애급사람들은 신관이 다 신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여호와는 유일신입니다.
이렇게 가장 중요한 신관 하나를 바꾸는데도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거룩한 선민으로써의 삶을 살아내려면..
꼭 필요한 훈련이었지만..
이것을 못 견뎌 하는 사람들은 광야에서 다 멸절을 당하였고..
출애굽 때에 생각이 고착화 되지 않은 20세 미만의 사람들과..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만 혹독한 훈련을 거쳐서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선생은 교육시키는 자입니다.
교육은 말 몇 마디로 순식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기준을 정하고 이것을 반복적으로 연습시키는 것입니다.
이미 아는 것을 반복하여 연습하는 것을 훈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목사와 교회가 모욕을 당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목사가 욕을 먹고 있는 원인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아마 교인들을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훈련을 시키지 아니하고..
자기의 제자를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가 사회적으로 사승이라고 일컬어지는 중들만도 못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스승이라고 일컬어지는 여자 무당들이나..
박수무당들만도 못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들이 성 추문에 휩싸여서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어 있습니다.
목사들이 재물에 눈이 멀어서..
편법과 불법을 총동원하여 제 배를 채우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 된 자로서 부끄럽습니다.
목사가 예수의 제자가 되려고 노력하여야 하는데..
그러한 노력이 너무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율법적으로도 대 선생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후에는 그리스도예수 복음의 대 선생입니다.
또 예수님의 제자이면서 큰 선생이신 야고보는 목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약3:1-2)
세상 모든 만물들은 사람이 길들일 수 있으나..
사람의 혀는 길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쏟아져 나오는 이 괴리감에 대하여..
야고보 선생님도 그렇게 한탄하였습니다.
목사가 먼저 예수 선생님의 제자가 되고 교인들을 훈련시키되..
예수 선생님의 제자 되는 성경적 기준을 마련한 다음..
사심 없이 바르게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이론으로만 알고 실생활에서 이론이 이루어지지 아니한다면 죽은 믿음일 뿐입니다.
선생노릇은 입의 말로가 아니고 생활태도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훌륭한 선생님은 학교 선생님이나 목사가 아니고 가정의 어머니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어머니의 말 한마디..
그리고 생활 태도는 훌륭한 신앙훈련입니다.
그런 어머니에게서 자라난 자녀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눈에 가장 아름다운 예수선생님의 제자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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