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은 하나님의 고유한 속성입니다.
이 세상에는 없는 것이 거룩입니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사람에게서 나올 수가 없는 것이 거룩입니다.
속된 사람이 거룩하신 그와 하나가 될 때 비로소 거룩한 존재가 될 뿐입니다.
구약에서의 제사와 신약에서의 예배는 동격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관문이 짐승의 희생 제사였습니다.
그것은 완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모형과 그림자였기 때문입니다.
장차오실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려고 속죄제와 화목제를 비롯한..
다섯 가지 제사종류와 네 가지 제사방법을 열거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속된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성을 다하여 드린 제사였어도..
어떤 제사는 하나님이 열납하지 아니하셨고 어떤 제사는 열납하셨습니다.
열납이 무슨 소리입니까? 기뻐할 ‘열’자에다가 받아들일 ‘납’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는 외면하시고 아벨의 제사는 열납하셨습니다.
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아니하시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간단히 생각하면 간단한 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가인의 제사는 거룩하지 아니하였고..
아벨의 제사는 거룩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속된 인간이 드리는 제사는 속되게 여기실 수 있습니다.
거룩한 품성을 간직한 인간이 드리는 제사는..
속되지 않고 거룩하게 여기실 수 있습니다.
가인은 인간됨됨이가 지극히 세상 적이고 정욕 적이어서..
목적을 위해서라면 교활한 방법도 서슴지 아니하였다고 유추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가인은 악한 자에게 속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요일 3:12)
가인은 그 이름이 말하는 것처럼 소유욕이 강하고..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아니하는 자였습니다.
이익을 얻기 위해서 사랑도 버릴 수 있고..
긍휼도 가차 없이 버릴 수 있는 양심입니다.
가인과 발람과 고라..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없는 것이 공통적으로 있었습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기준을 파괴할 수 있고..
과정도 생략할 수 있으며 불법도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는 양심입니다.
가인은 사랑을 저버리고 마침내 살인을 저지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발람은 재물에 대한 욕심이 너무 커서..
간교한 꾀를 내어 선한 사람들을 유혹케 하고 2만 4천명이 몰살당하게 하였습니다.
고라는 명예욕과 지배욕에 파묻혀 250명의 지도자들을 끌어들여..
자기와 함께 저주를 받고 멸망의 길로 몰려가도록 하였습니다.
이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 마음과 생각과 말에서 한결같이 거룩함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풍부하십니다.
그러나 이들에게서는 이런 것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웃에게 해를 끼쳐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유1:11)
자식이 그 부모를 닮지 않았다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가인에게서는 하나님의 품성이 발견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벨에게서는 의로움이 발견됩니다.(요일3:12)
평소의 삶에서 의로움이 발견되고 일상생활에서 선행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님에게서 나온 자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자식에게서 하나님의 모양이 발견되고 하나님의 냄새가 풍긴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가 기쁘시겠습니까?
그가 비록 제사법에도 맞지 않는 제사를 드린다고 하여도..
하나님은 그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아들이, 얼굴에 흉측한 칼자국이 있고 성격도 고약한 이웃집 남자를 닮았고..
하는 짓도 나와는 전혀 다른 말과 행동을 보인다면 그게 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살인강도 짓으로 구해온 음식을 기뻐할 수 있습니까?
아들이라면 반드시 아버지를 닮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거룩한데 아들에게는 거룩한 구석은 없고 속되고 욕심 덩어리이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불의하고 악독하고 더러운 것만 그 속에 가득하다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와 연합하여 하나가 됨으로서..
거룩한 존재가 됩니다.
거룩한 자들이 자신의 일상생활로서 사랑과 긍휼을 이웃들에게 베풂으로서..
이웃들을 이롭게 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산제사가 되는 것입니다.(롭12:1-2)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에만 거룩한 것 같고 신령한 것 같다면 문제입니다.
교회 문밖을 나서자마자 세상 사람과 다를 것이 없는 사람..
가인과 발람과 고라와 같은 자로 하나님 눈에 발견되고 있다면 허무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긍휼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리지는 아니하십니다.
가인이 비록 거룩을 잃어버렸으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당장 끊어지지는 아니하였습니다.
그의 제사가 열납되지 아니하였어도 하나님은 그와 말씀하셨고..
아우 아벨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도록 하셨습니다.
그가 인간 최초로 살인을 저질렀어도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심지어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을 하셨습니다.
가인의 기도까지도 들어주시고 응답하셨던 그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그리스도의 피가 중심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를 어찌 들으시지 않겠습니까?
세심히 들어주시고 응답하십니다.
'오, 나의 하나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인가.. (0) | 2022.11.07 |
---|---|
옛언약과 새언약.. (0) | 2022.11.07 |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0) | 2022.11.07 |
바른 인생길 3년.. (0) | 2022.11.07 |
절기를 성대하게 지켜라.. (0) | 2022.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