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예수 믿기 전과 후가 크게 달라지게 보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육신의 때를 사는 동안..
근본적으로 그 타고난 성품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죄 된 모습들이 우리 생활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추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못난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좋은 것들을 선물로 퍼부어주십니다.
그뿐 아니라 선물을 받고 즐거워하면서..
더 좋은 것들을 바라고 그분을 바라볼 때..
나중에 더 엄청난 선물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지금 작은 것들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당장 보이지는 않으나 감당키 어려울 만큼 큰 선물과 상급을 약속하셨습니다.
지금 작은 것들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된 큰 선물에 대하여 의심할 겨를이 없습니다.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빨리 알려서..
그들도 이 좋은 것들을 같이 받고 즐거워하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왕하7:9)
좋은 것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사람들은 기쁨에 들떠있기 마련입니다.
그 즐거워하는 모습이 약속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시기와 질투로 몰아가고..
그들의 눈과 입은 심술과 꼴통으로 일그러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핍박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핍박의 양상은 약점을(죄와 허물) 건드리는 것을 시작으로..
점점 강도가 심해져서..
나중에는 [하나님이 없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고..
온갖 형태의 공격이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까지 다다르면..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원망의 말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원망할 조건이 충분하여 원망했어도..
[원망하면 반드시 망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고전 10:10)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약속(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을 기다리던 중..
조급증에 시달리던 사래에 의하여 이스마엘을 낳았더니..
그가 [육체를 따라 난 자]이고..
십 수 년 후에 마침내..
하나님이 약속하신 자, 늙은 사라의 몸에서 이삭이 나왔습니다.
이삭이 젖을 떼는 날 큰 잔치가 있어서 흥겨워하던 중에..
육체를 따라 난 이스마엘이 약속을 따라 난 이삭을 희롱하여 괴롭혔습니다.
이스마엘 입장에서는 배알이 심히 뒤틀렸을 것이고..
이삭의 입장에서는 몹시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연약한 이삭의 고통소리를 들은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말했고..
고민하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내어 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21:1-12, 갈4:21-31)
주와 복음을 위하여 핍박받는 우리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연약하고 누추하고 어리석어 보이지만..
크고 완벽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핍박하던 자들을 내어 쫓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핍박을 왜 받아야합니까?
죄를 지어서 받는 비난이라면 그것은 핍박이 아닙니다.
악을 행하여 받는 고난이라면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생 고생일 뿐입니다.
주와 복음을 위하여 받는 환란이 핍박입니다.
핍박이 고통스러운 일이기는 하나..
믿는 자들이 피할 대상은 아닙니다.
핍박을 받을 때 괴로워하거나 슬퍼할 일은 더욱 아닙니다.
신앙생활 하다가 핍박이 오면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나중에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마5:10-12)
핍박 받을 때 저주하면 안 됩니다.
그 저주가 그 말한 대로 이루어지면 비극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도 같이 복을 나눠받는 자가 되고..
또 그가 주와 복음의 편만을 위한 중요한 협력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옛날에 필자의 어머니는..
아들이 예수 믿어서 집안이 되는 일이 없다며..
입에 담기도 두려운 악담을 퍼부었었습니다.
어머니에게 불같이 화를 내기는 했어도..
어머니를 저주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부모님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더니..
하나님이 부모님으로 하여금 예수 믿게 하셨고..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뙤약볕에서 노동하는 것보다 그늘에서 쉬는 것이 확실히 편합니다.
뜀박질을 하는 것보다 걷는 것이 훨씬 편하고..
걷는 것도 많이 걸으면 서있는 것이 더 편합니다.
서 있는 것보다 앉아있는 것이..
앉아있는 것보다 누워 있는 것이 더 편하며..
누워있는 것도 오래하면 지겹습니다.
잠자는 것보다 더 편한 것을 찾는다면..
속 썩이지 말고 어서 빨리 죽어버려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편안한 게] 목적이 아닙니다.
좋은 것을 쟁취하려는 욕구가 없다면..
신앙생활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쩌다가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어도..
얼마 못가서 세상으로 돌아가 더 악독한 변절자가 되어..
한 때 형제자매였던 교회와 신자들을 공격합니다.(마13:20-21)
하늘나라의 유업은 좋은 것들 뿐입니다.
좋은 것들을 선물로 받아 누리다가 보니..
더 크고 좋은 것들이 천국에 온전히 숨어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을 움켜쥐고 보니..
그림자에 불과한 이 세상의 것들을..
가치 없고 낮은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주와 복음을 위하여 집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고..
복음의 전파를 위하여 형제자매와 부모와 자식과 토지를 버렸습니다.
버렸다는 소리는..
그런 소소한 문제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모두 맡기면 잘 될 것이라고 믿고..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몽땅 그분께 맡겼다는 소리입니다.
왜 맡겨야합니까?
현세에 있어 하나님께 맡긴 그 모든 것이..
내가 염려하고 노력하여 얻으려 한 것보다 백배나 더 잘되어..
저절로 형통하고 윤택하여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 한 가지 각오해야 할 것은..
반드시 핍박이 뒤따른다는 그 사실입니다.
그 핍박과 함께 엄청난 상급과 영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합니다.(막10: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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