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하나님!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순악질 의자왕 2022. 7. 27. 17:19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헛것으로 잘못생각하고 무시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자체를 부정하고 덤빕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여겨서 반대하고 미워합니다.

어딘가 좀 많이 부족하게 생각되어서 딱한 듯이 바라보기도 합니다.

약간의 허물이나 실수를 발견하게 되는 날에는..

뻥튀기하듯 부풀려서 광포하면서 전체를 매도해버리기도 합니다.

그 누가 아무리 뭐라고 그래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모든 말씀을 범사에 인정하고..

그것을 기준삼아서 육신의 때를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천지를 창조하시고 세상 만물을 조성하신 후에 맨 나중에 사람을 만드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먼저 생겨난 모든 것들을 다스리는 통치자로 세우셨습니다.

그 하나님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은 그 하나님께 감사의 사례를 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감사로 영광을 그에게 돌리며 그의 말씀을 따라 기쁘시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그를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을 건너뛰고 교회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다니엘서 3장을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거기에는 세 명의 다니엘 친구들의 신앙의 독실함이 뚝뚝 묻어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그와 같아야 합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자기 자신을 형상화한 금신상을 두라 평지에 세워놓고..

거기에 절하라고 모든 인민에게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금신상에 절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외에 모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국가권력은 절대적입니다.

그러나 그 권력 위에는 더 큰 권력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람이 마땅히 하나님을 제쳐두고..

세상의 그 어떤 권력 앞에 무릎 꿇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금신상에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게 누구든 간에..

펄펄 끓는 용광로에 집어 처넣을 것이라는 협박이 두렵기는 하나..

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요즘 [비대면 예배]라는 듣보잡의 해괴한 용어가 난무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의미합니다.

비대면 결혼도 있습니까?

비대면 오찬이나 비대면 만찬이 있습니까?

비대면 세례식이나 비대면 성찬예식을 거행할 수도 있습니까?

이것은 악하고 음흉한 정권에 의해 기독교회가 표적이 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믿음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이 불순하고 악한 세상 권력자들의 흉계를 정면으로 대적하여야 합니다.

 


육신의 때에 예수 믿는 우리의 최고의 가치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써 맹세하신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의 생활입니다.

우리의 이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믿음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여야만 비로소 믿음이라고 인정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딘가에 보내셨으면 그곳에서 다음에 할 일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가 다 하십니다.

열두 정탐꾼을 선발하여 가나안 땅에 보냄을 받았으면..

자기가 받은 느낌을 말할 것이 아니라..

사람보기에 그 무시무시한 상황들을 하나님께서 여지없이 허물어뜨리고..

하나님의 군대들로 하여금..

그것을 쟁취하도록 하시겠다는 것을 생각하고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올바르고 정확한 말을 했어도 돌을 던져 죽이려고 하는 자들의..

살기등등한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정체절명의 순간 하나님께서 등장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그들이 입으로 쏟아낸 믿음 없는 말들에 대하여 형벌의 말씀을 선언하셨습니다.

자기들이 흉측하게 상상하고 예측한 대로 그대로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저 믿음 없는 자들의 만용이 가관입니다.

하나님의 선언을 무시하고 원래의 목적대로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믿음 없는 자들의 회개하는 모습’입니다.

손바닥 뒤집듯 악한 말을 바꾸면 일사천리 만사형통할 줄로 착각하고..

그저 무작정 직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들과 함께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함께하지 아니하신다면..

그 모든 노력은 헛된 노력이고 만용일 뿐입니다.

당을 짓는 어떤 집단마다 선동하기 좋아하는 자들이 꼭 있습니다.

그 선동꾼들에 의해 반역이 일어나고 만용이 일어납니다.

결국은 그들 자신..

즉 선동의 몸통들과 선동의 깃털들이 함께 멸망을 당하였습니다.(민14:39-45)

 


오늘날 교회에서도 비슷한 상황들이 펼쳐질 수 있습니다.

믿음 없는 자들의 당을 짓는 짓과 선동하는 짓들입니다.

그들의 선동질은 반드시 ‘교회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로 시작합니다.

목사가 그러면 안 돼!

장로가 그러면 안 돼!

집사가 그러면 안 돼!

하나님의 말씀은 제쳐두고 자기의 생각에 따라 당을 지어 선동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를 위한 일인 것 같고 가장 옳은 방법인 것 같으나..

하나님의 말씀과 조금이라도 배척이 된다면..

오히려 교회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쓰레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위입니다.

자기 속에서 나온 우리의 노력과 헌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다면..

그것은 쓰레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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